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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자신감> 걷기 _ 글 : 청야 김민식 (캘거리)
 
노년 생활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노년의 자신감, 향유에 관한 나의 출발점은 언제, 어디로부터 온 것 인가. COVID 전염병 생활을 3년 여 경험하는 동안 인간의 노화시기는 각자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인간 100세 시대는 이미 도래한 시점이다. 나도 이제 막 노년에 접어 드는 시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담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영하 20도, 맥도날드에서 진한 커피 한잔으로 목을 데운 후, 핸드폰에 저장한 600여권의 책들 중에 김형석 교수의 자서전들, 에머슨의 <자연>, 소로의 <월든>의 메모장 이북을 읽는다. 형형 색색 밑줄 그었던 대목들을 다시 읽으며, 마치 출정을 앞둔 1차대전 프랑스 병사처럼 당시의 상황을 그리며 심연의 전의를 다진다.
두툼하고 큰 선글라스, 자겟, 방한복, 방한모, 장갑, 마스크까지 챙기고 상의 주머니 핸드폰에서 56분 분량의 연속 행진곡을 틀었다. 광고가 삭제된 이 앱을 좋아한다.

‘성조기여 영원하라’ 독일 행진곡 ‘옛 친구’를 시작으로 40분간 긴 사유의 산책 행진이 행진곡에 맞추어 시작된다. 행진곡을 멈출게 할 자유는 없다. 나의 삶을 지속적으로 추수리게 만드는 산책 시간이다. 올 겨울 들어서는 일주일에 4~5일은 이런 방식으로 혼자 걸으며 왜 삶을 사는지, 살아야 하는지 존재의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보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오도독오도독 꽈리 씹듯 발목까지 패인 가루 숫눈길에 들어선다. 내 발자국을 수없이 남긴 숫눈의 흔적, 자연에 부지런한 자들이 쟁취하는 쾌감, 노년을 향유하는 기쁨이다. 여름에도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호젓하고 짧은 오솔길을 으레 통과 의식처럼 들어서니, 여린 자작나무들이 쌓인 폭설의 무게를 못 이긴 채 휘어진 모습이 처량하다.

긴 칼을 쌍 십자로 높게 든, 좌우로 늘어선 자연의 병사들로부터 사열을 받는다. 어떤 여린 나무는 너무 휘어져 지나 갈 수가 없다. 처음 경험하는 사열이라 행진곡에 맞추어 제자리 걸음으로 좌우를 살피다가 툭 치니 널뛰듯 이내 제자리로 주삣이 치솟는다. 그 사이로 까치집이 우뚝 나타난다.
자연에 친밀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이 길들을 걸으며 까치집을 찾으려고 수없이 관찰했는데
이미 폐허가 된 집들만 널 부려 졌을 뿐 늘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몇 년 만에 발견한 까치집인가. 코요테는 까치 알을 훔쳐 먹는 폭군들이다. 이곳의 까치집은 천혜의 조건으로 지어졌다 모두 여린 자작나무로 둘러 쌓여 코요테가 까치집까지 타고 올라갈 수가 없다. 숫눈길 안쪽 구석구석에는 밤새 야생 짐승들의 발자국으로 얼룩져있다. 까치는 지혜로운 영물이다.

오솔길 좌우로 낮은 구릉으로 둘러 쌓여 있어 4계절 바람과 자연의 향기들이 머물다 간다. 봄에는 해당화 들장미, 아카시아가 은은한 향을 피우고 늦 여름 내내 엉겅퀴 향이 코끝에 머문다. 나도 느린 제자리 걸음으로 머문다. 속삭이며 순간의 정다운 인사들을 나눈다. . 오솔길을 벗어나 저수지 언덕길을 걷는다. 산책하는 사람이 먼 발치에 두 명이 보일 뿐이다. 머리를 들고 꼿꼿한 자세로 힘차게 걷는다. 우람하고 남성적인 풍광들,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체감 온도가 영하 30도는 될 것 같다. 광활한 올레길을 나 홀로 걸어간다. 행군하는 병사처럼 팔을 세차게 흔들고. 발 뒤꿈치로 밀어 보폭을 3-4cm 더 넓히며 행진곡에 맞추어 뽀드득뽀드득 구령을 붙인다.
자연의 풍광은 매일 새롭게 달라진다. 온 몸이 후끈 달아 오른다.

우우우- 웅 우웅
겨울 나무의 쉬 임 없이 우는 소리에 오싹 전율이 온다. 로키산맥을 타고 내려오며 광활한 저수지를 미끄러지듯 속도가 붙는다. 쌩쌩한 바람 소리, 이 저수지 자드락 길을 타고 겨울 나무를 휘몰아 감더니 대뜸 후려친다. 태어나서 죽고 새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10.000년의 유구한 세월을 묵묵히 버티던 호수에서
둘레길의 자작 나무도 울고, 아카시아 나무도 운다. 겨울 들장미의 앙칼진 울음은 더욱 처량하게 방한모 속으로 파고든다.
호수물은 얼음장 밑으로 숨고 코요테, 토끼도 땅굴 속으로 피한다. 비버도 썰어 놓은 나뭇가지로 숨는데,
겨울 나무는 온 몸으로 세찬바람을 맞으며 울면서 견디어 낸다. 나도 금새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울컥거린다.

우로 - 봣!
호수 건너 로키산맥의 거룩한 모습. 보폭을 줄이며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린 채 한 참을 좁은 보폭으로 걷는다.
그 풍광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창조된다. 행진곡마저 시간 속으로 숨어 흐르는 그 감격의 순간들, 오늘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오른 쪽을 바라보며 팔을 들어 거수경례를 한 채로 걷는다. 또 눈물을 글썽이며 행진한다. 이 순간에도 주머니 속 행진곡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오! 환희의 천국 산책길, 이 아름다운 순간들이여.
자연은 눈물겹도록 아름답지만 때로는 잔혹스럽다. 수없이 기도를 해도 무심하다. 자연은 내가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가르쳐 줄 뿐이다. 그것의 의미는 인간이 계산하는 시간에서 벗어나 행진곡의 박자처럼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노년을 창조적으로 살아보라고 주문하는 바람소리 같은 것이다.

캐나다에서 노년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독서, 마음 비움, 창조의 생활, 타자의 사랑, 취미의 일상화, 건강, 힘들 정도의 바쁜 생활들이 노년생활의 자신감을 고양 시킨다. 이것들은 모두 상관관계로 얽혀 있으나, 그 중에서 나는 걷기를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로키산맥을 지척에 두고 많은 시간을 등산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매일 30여분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유의 산책을 사랑한다. 은밀한 자연의 풍광 속을 홀로 걸으며 사유 속에서 잉태하는 자신감, 내가 꿈꾸며 향유하는 것이다..

한 해의 저녁놀이 끝나면 먼 동의 새해 일출
아침노을을 맞으러 동쪽 건너편 호수가로 갈 것이다. 그리고 인근 카페에서 커피와 독서로 아침을 보내고,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아들 가족, 딸과 함께 브런치로 식사를 끝내면 가게로 나가서 문을 열고 영업을 할 것이다.
벌써 가슴이 뛴다
환희의 한 해가 밝아 오는 것도 부지런한 걷기에서 출발할 것이다. 새해에도 쉬 임 없이 빠른 걸음으로 행진 하며 시간을 쪼개서 바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 길에는 외로움도 고독도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죽음도 전혀 두렵지 않은 자신감이 습관으로 승화되어서 노년의 운명이 바뀌기를 기도할 뿐이다.

기사 등록일: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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