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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알고리즘 _ 목향 이명희 (캘거리)
 
 
나는 조카들에게 가족 계도의 중간 뿌리다. 오래전 언니의 아들과 오빠의 딸이 이모이자 고모인 내가 캐나다에 살고 있다 하여 취업 비자를 받고 왔었다. 조카들이 가정을 이뤄 캐나다에 사니 외롭지 않고 좋았다. 타국에 친척이 있다는 건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다.

오빠의 딸네는 미국물을 먹어서인지 캐나다의 뒤처진 문화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미국 영주권을 받아 미 동부에 살고 있고, 언니의 아들네는 캐나다 비씨 주 북쪽에 살고 있어 자주는 못 봐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만나고 있다.

이민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이민이 꿈인 사람도 있지만 자기 뜻대로 살 수 없어 온 건데 교육 이민은 그나마 평범하다. 사업 실패와 이혼, 다양한 문제 등을 안고 와서인지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도 극한 상황이면 이민을 운운한다.

가난한 큰언니가 있는데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독자인 아들마저 사업에 실패해 언니의 노후를 생각해 조카를 캐나다로 불렀다. 이민의 과정도 쉽지 않지만 취업 비자로 온 경우는 영주권을 받기까지 마음고생을 톡톡히 한다. 자기 사업만 했던 조카가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게 적응이 안 되던지 매년 직장을 옮겨 3년이면 받을 영주권을 8년 만에 받았다. 나는 조카가 이직하는 곳마다 방문했는데 처조카임에도 불구하고 동행해 준 남편이 고맙다.

빈털터리로 온 조카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알고리즘을 풀어낸 건 대견한 일이다. 타국에서 반려자를 만나는 일, 자식을 얻는 일, 본업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다 이루었다. 처음엔 기대하지 않았다. 조카는 부지런하고 성실한데 인내심이 부족했고, 직장 내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오래전 조카가 사업 자본금을 부탁했을 때 거절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이모 이모부한테 섭섭했던지 몇 년간 연락을 끊었는데 지금은 오뚝이처럼 일어나 믿음과 신뢰를 회복했다.

조카가 사업으로 바빠 이번에는 우리 부부가 조카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챙겨 아침 6시 30분에 조카 집으로 향했다. 땅덩어리가 세계 2위답게 주에서 주를 이동하는데 하루가 걸렸다. 주변 풍광을 보며 음악을 듣고 가니 지루한 줄 모르게 도착했다. 조카는 착한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가장이 되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게 이모부와 같이 늙고 있었다. 나는 이모할머니가 되어 결혼 못 한 자식들 대신 조카의 딸을 손녀 삼아 대리만족했다. 손녀딸은 작년에 캠프장에서 만날 때보다 제 집이라 그런지 명랑했다. 우리는 조카가 맨몸으로 일군 사업장과 집 장만을 축하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뿌듯해했다.

이민 온 사람들은 어떤 알고리즘을 갖고 있을까. 나의 경우는 남편이 사직 하지 않는 한 해외나 지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어서 교육과 가정을 살리는 방법으로 이민을 선택했다. 그 시절부터 대기업의 명퇴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시부모님은 아들의 미래를 위해 반대하기보다 권장했다. 처음엔 맘고생이 있었지만, 십수 년간 객지 생활을 한 터라 가족 모두 적응을 잘했다.

이민자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살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 있어도 타국에서 시작하는 삶은 황무지를 개척하는 것과 같다. 이민자 중에는 판단을 잘 못해 사업을 하다가 전 재산을 날린 경우도 있다. 사오십 년 전의 이민자들은 국외 반출 금액이 이백만 원으로 제한됐었다고 한다. 그들은 신입 이민자들에게 과거사를 들려주며 감개무량해 한다. 타국에서 자리 잡기까지의 험난한 이력,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모두가 영웅이다. 이민의 역사 속에는 실패한 사람도 있고 성공한 사람도 있다. 조카가 이곳에 왔을 때는 꼬깃꼬깃 구겨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주름을 펴서 입기까지 다림질의 시간이 꽤 걸렸다.

이민자의 알고리즘은 ‘톨만의 미로 찾기’와 흡사하다. 배고픈 쥐가 처음엔 길을 몰라 헤매다가 결국 먹이 상자에 도달하여 먹이를 먹는 것과 같다. 척박하고 낯선 곳에 와서 자리 잡기까지 거듭된 시행착오를 겪는 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학습경험을 통해 완성하기 때문이다.

고전 음악가들도 사연이 있다. 쇼팽은 연인과의 이별로 고국인 폴란드에서 파리로 떠났고. 베토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독일에서 체코, 베를린으로 떠났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연주 욕심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유럽을 전전했다. 그들의 문제는 일반 사람들보다 난해하다. 훌륭한 예술가들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원하지 않는 연주를 해야만 했다. 음악의 천재들도 꼬인 알고리즘을 푸느라 고난을 겪었다.

이민자의 알고리즘은 진화되고 있으며 해결 절차도 다양하다. 그들은 최소 두 개의 언어와 문화를 섭렵해야 하는데 제2 외국어는 필수 알고리즘이다. 어학연수를 한 젊은 세대는 정착과 성공이 빠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언어 구사 능력이 완벽하면 방송일이나 취업, 영주권까지 논스톱으로 해결한다.

이민이 용기 있는 사람의 도전이라면 각자의 알고리즘을 풀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민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련의 방법을 차분하게 완수한다. 이민자들이 사는 곳은 타국인 동시에 고국이다. 타국에서 행복하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24-01-15
Juksan | 2024-01-15 1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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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공감합니다. 그 조카가 기특하네요.
또한 우리의 이민 역사를 대변해 주는 글이라 아마 이민자라면 고개를 끄덕이지 싶어요.
"이민은 용기 있는 사람의 도전이라면, 그걸 잘 풀어나가는 사람한테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민 후배들한테 필요한 조언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캘거리철 | 2024-02-09 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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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민와서 이룬것이 없고, 겸손의 미덕이라는 의미조차 잘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글을 읽고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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