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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채식주의자'를 읽다 _ 淵默 이호성 소설가 (한국문협 알버타문학)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이제서야 읽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해서 이제서야 들었다.
필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순전히 복잡하게 머리 쓰지 않고 충분히 내 시간을 내서 나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주저 없이 선택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와 달리 좀처럼 나는 내 글을 쓸 시간을 낼 수 없다. 일이 끝나서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씻으면 그냥 침대로 쓰러진다. 책도 읽을 수 없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든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먹고 살기 위한 돈과 교환해 버리곤 그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가 없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아직 못 읽은 채였다. 책도 구할 수 없었다. 방법을 생각하다가 레스브릿지 지방 출장을 가는 긴 시간, 운전하는 동안 오디오 북으로 채식주의자를 들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사실 상업예술에 종사해 온 필자가 노벨 문학상을 탄 거두의 책을 평하는 것 자체가 건방진 일이다. 그리고 상업예술과 한강 작가의 소설류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한강 작가의 작품은 거칠고 불편하지만 몸에 좋은 통 곡물 같은 것이라면 내가 했던 상업예술들은 잘 정제되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진 밀가루와 설탕 덩어리 같은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관찰(Observation)과 묘사(Description)가 시작이다. 소설가는 자신의 머리에서 떠 오른 이미지를 글로 묘사해야 하는 엄청난 난이도의 작업을 숙명으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했던 상업 예술은 그럴 필요가 없다.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은 미사여구나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영상을 찍기 위한 암호나 설계도 같은 것이다. 찍어서 영상 그대로를 관객에게 보여 주는 것이니 관찰과 묘사가 필요 없다.

나는 영상이 지배하게 될, 아니 이미 지배한 우리 생활에서 소설도 영화나 영상을 글로 표현하는 간략함으로 변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것이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소설들은 시나리오처럼 Scene 이 변하면 번호를 메기고 최대한 간략하고 명확한 상황을 전달하려 노력한다.

서론이 길었다. 나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한동안 덮어 버렸던 전통적 소설 트루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니 너무 빠져 들었다.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에 몸을 맡기는 순간부터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아프고 힘들고 우울하고 결국 눈물이 나왔다. 혹자는 채식주의자란 소설을 Ecofeminism 이란 어려운 말로 설명하려 든다.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폭력을 고발한 소설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본인도 그런 인터뷰를 한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독자의 재해석(Reproduction)은 전적으로 독자의 영역이다. 거기다 필자는 채식주의자라는 걸작의 소설이 그리 협소하게 해석되는 것은 오히려 작품의 진가를 반감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이제 독자의 재해석 영역에서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에 우리 몸을 있는 그대로 맡겨 보자. 필자는 아무 선입견 없이 필자의 몸을 던지는 순간 극심한 우울감과 심적인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바로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소구력인 동일시라는 비수에 찔린 탓이었다.

세 가지 에피소드 중 첫 번째 채식주의자에서 필자는 같은 작가로서 자석처럼 주인공 영혜에 흡인되어 그 고통이 시작되었다. 영혜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채식 강박은 바로 다름을 의미한다. 영혜의 다름은 구조적으로 여러가지 대체제로 등치 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LGBTQ를 집어넣을 수도 있고 독신주의를 집어넣을 수도 있다.

이 사회에서 걸림돌이 되는 보통과 “다름”을 영혜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그 다름이 있다. 그 다름으로 작가가 되었고 아마 한강 작가도 그 다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다름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더욱 더 영혜에 동일시된다.

그 고통은 심화되고 악화된다. 왜냐하면 작품 속의 영혜의 다름은 이미 학대받고 짓눌리고 부서뜨려져서 작품 초기부터 조현병이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상태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남들과 “다름”이 있을 때 같아지도록 회유당하고 강요당하고 검열 당한다. 하지만 다름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영혜처럼 거대하고 지독히도 오래 된 다름은 통제되고 강제되면 피해자의 정신을 파괴하고 터질 곳을 찾아 기뢰처럼 떠다닌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흔한 강제력의 일종인 가부장적 폭력에 의해 터져 버린 것이다. 영혜가 터진 것이다.

그렇게 터져버린 영혜의 만신창이 육신은 다름에서 획일로 철저하게 교화되고 순화되고 훈련받은 평범한 류, 이를테면 영혜의 남편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수습되고 처리가 된다. 이미 정품으로 교화되어 출시된 평범한 사람인 남편의 입장에서는 영혜의 행동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결혼도 그런 평범함 속에 숨어 버리고 싶어서 가장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영혜와 하지 않았던가?

2편 몽고반점에서는 그렇게 철저히 공중분해 된 영혜의 육체를 탐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 사람이 형부라는 충격은 이 소설의 깊은 상처와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재미 있는 것은 2편이 되면서 작가의 문장 구조가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했다, 되었다 식의 과거형 맺음말들이 한다, 간다 등의 현재형 동사로 바뀌고 최대한 무미 건조하려 노력했던 1편과는 달리 무섭도록 탐미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바뀌게 된다.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성적 접근성 좋은 환경도 만들어 놓고 몸에 꽃 그림을 그려 넣고 탐미적 섹스를 연상시키는 수려한 성적 묘사를 곁들여서 청소년 유해도서 지정에 한 몫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뭔가 다른 성적 충동, 마치 일본의 로망 포르노를 보는 듯한 근사함으로 위장 시키지만 처제를 탐한 형부는 그냥 개종자다. 영혜는 정신도 갈기갈기 찢긴 상태에서 몸까지 처절하게 유린당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 때 섹스를 하고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살인을 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모든 행위에는 동기도 있고 그럴싸한 이유도 있고 명분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종자 짓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영혜의 정신과 육체는 남자들에 의해서, 사회적 폭력에 의해서 한 번 더 만신창이가 된다.

필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에피소드가 3편 나무 불꽃이었다. 더 이상 부서질 곳도 찢어질 것도 없이 박살 난 영혜의 육신이 나무가 되기 위해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장면을 보고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이 소설에서 어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이토록 처절하게 파괴된 영혼을 묘사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나마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인 영혜의 언니 인혜를 대비시켜 독백을 한다. 보편 타당한 사람인 인혜도 죽을힘을 다 해 자신 속의 다름을 숨기고 버티고 있음을… 그런 인혜 앞에서 갈갈이 찢겨 나무로 퇴화되어 죽어가는 동생을 잔인하면서도 담담히 묘사를 하는, 작가의 무섭도록 치밀하고 냉철한 독백이었다.

전언했듯 이 작품은 여러 해석들이 분분한 작품이다. 페미니즘과 가부장적 폭력의 대비로 해석되기도 하고 사회적 폭력에 의한 정신적 트라우마라는 정신분석학적 접근도 있으며 영혜의 처절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재해석이란 또 다른 영역에서의 독자로서의 몫을 더 우선에 두고 싶다. 창작 작품을 재해석(Reproduction)하는 일은 예술 활동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문협 정모에서 필자의 순서로 작품 토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재해석 개념조차 확실히 정립되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보고 순간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필자의 재해석으로 인혜의 다름을 동일시하곤 근래에 겪어 보지 못한 두려움, 우울 감 그리고 절망감을 느껴 고통스러웠다. 이것이 이 소설의 힘이라 생각한다. 카메라처럼 총천연색의 완벽한 정보를 시각적 감각에 직접 투사하는 그런 정보가 아닌, 순수하게 작가의 필력으로, 상상력으로 카메라를 뛰어 넘는 파괴력을 발휘하는 작가에게 그저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이호성 소설가
-한양대학교 영화과 졸업
-서강대 KBS 작가과정 수료
-토론토 센테니얼 컬리지 졸업
-옐로우 필름 프리랜서 작가
-MBC 26부작 애니매이션 “쉐도우 파이터” 집필
-일본 BROAD TV, 한국 스타산지
합작 영화 “Fly High” 시나리오 집필
-2021년 캘거리 문협 신춘문예 소설 부분 당선
(아가야 니빵 내가 먹었다)
-2023년 장편 소설 “지워진 우리들의 날” 출간
-2025 (사)한국문협 알버타지부 이사


기사 등록일: 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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