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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의 기자수첩) 달라지는 세계 질서, 한 세대가 저물어 간다 - 악수하는 중동의 견원지간
출처 : 조선일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가 화해의 악수를 했다. 차이나가 중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의 양 강 이란과 사우디는 2016년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사우디가 시아파 지도자 4명을 사형에 처하자 성난 이란 군중들이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해 양국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나 2016년 이전에도 두 나라는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이란이 1979년 혁명으로 반미 국가로 되면서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혁명이란 전염성이 있어 주변 지역으로 번지게 되어있다.
이란은 혁명수비대라는 군사조직을 통해 헤즈볼라, 후티, 이라크 이란 동맹 등 시아파 무장조직을 지원하며 이슬람 혁명 수출을 추구하고 있다.
이슬람 혁명의 최종 목표는 전 세계에 이슬람을 전파해 이슬람화 하는데 있다. 이 같은 혁명정신에 대해 반대파인 수니파도 그 목표는 인정하고 있다.
사우디를 비롯한 쿠웨이트, UAE 등 절대왕정 국가들은 혁명 수출하겠다며 무장조직 지원하는 이란이 골치거리다.
그리고 두 나라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인종이 다르다.
이란은 아리안족이고 사우디는 셈족이다.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이란은 시아파 종주국이고 사우디는 수니파 종주국으로 이슬람 양대 성지,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이란은 이슬람 이념에 기초한 이슬람 공화국이지만 4년마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민주주의 국가이고 사우디는 왕이 만기를 친람하는 절대왕정국가다.
무엇보다도 이란은 사우디를 한 수 아래로 보고 있다. “우리가 제국을 건설할 때 너희들은 오아시스 돌아다니며 고작 양이나 치지 않았나?”
이란은 핵사찰로 인한 미국 제재 때문에 경제가 매우 어려워 체제 유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이번 사우디와 외교관계 재개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사우디는 과거 단순히 원유만 퍼내 수출하면 되었으나 화석연료의 종말이 다가오는 현실을 인정해 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 대안이 비전2030으로 외국 회사의 투자가 필요한데 안보가 중요하다.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 투자하는 기업은 없으니까. 즉, 이란은 혁명 수출한다고 무장단체들 부추겨 아랍국가들 안보를 위태롭지 않게 해야 한다.
두 나라는 국내 상황 때문에 악수를 했다. 그리고 이란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러시아 편에 섰다. 반미국가로서 당연한 결정이지만 이란은 기본적으로 친 서방국가로 제재가 풀리면 서방으로 돌아설 것이다. 제재 풀리면 독일 프랑스가 먼저 들어 갈 것이다. 러시아나 차이나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은 네가 어쩔 수 없이 우리편에 섰지만 언젠가 떠날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과 사우드 국왕, 세기의 만남
1945년 2월, 루즈벨트 대통령은 얄타에서 연합국 수뇌들과 전후 세계질서 개편을 논의한후 군함 퀸시호를 타고 수에즈 운하로 향했다. 발렌타인 데이(2월14일)에 그곳에서 사우디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를 만났다. 세계 최강의 대통령이 부족을 통합해 나라를 만든 지 겨우 13년된 신생국 지도자를 만났다.
여담인데 사우드 국왕이 양떼를 몰고 퀸시호에 올라 양을 잡아 루즈벨트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그러나 이 회담은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지고 사우디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원유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미국의 번영에 절대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국도 에너지 안정적 공급을 위해 팔 걷어붙이고 나섰으나 미국이 선수를 쳤다.
그 당시 전통 산유국은 이란, 이라크였으나 신생국 사우디를 택한 이유는 아람코가 막대한 양의유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후 70년대 에너지 파동을 겪기도 했으나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70년 이상 미국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으로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했고 냉전체제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미국이 중동에 공을 들인 이유는 위에서 보듯 첫째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다. 둘째는 냉전시대 우군확보다. 미국은 부패하고 비 민주적인 중동 절대왕정국가들을 회유하며 지지를 끌어냈다. 필요했다. 셋째 이스라엘 안보다.
냉전은 끝났고 미국은 셰일 개발로 에너지 자급자족 시대에 들어섰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인지적 동맹관계로 이심전심 통하는 게 있어 이스라엘 안보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미국의 정책에서 중동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로 사우디 실권자 빈 살만을 지목하며 분노했던 일도 미국의 중동 정책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시사하는 장면이다. 미국의 관심이 줄어들자 차이나와 러시아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사우디가 차이나, 러시아에 기울고 있고 미국과 관계는 멀어지고 있으나 그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사우디는 지난 70년간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했는데 앞으로도 안보, 국방은 계속 미국 시스템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관심은 차이나 견제에 있다. 트럼프 때부터 이어지는 무역분쟁, 대만문제, 한미일 군사공조로 차이나를 압박하려 하고 있다.

아들 부시와 네오콘의 헛발질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의 기폭제는 9.11이다. 9.11의 주범 19명은 사우디 국적 15명, 이집트 국적 4명으로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 국민들이다. 미국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정권은 친미였으나 대중들은 반미였던 것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해 동맹국들과 함께 알 카에다 본부가 있는 아프간으로 향했다.
2002년 1월 아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악의 축’ 이란 단어를 썼는데 이 조어는 훌륭해 영미, 유럽 동맹국 시민들의 가슴에 테러의 증오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축(axis)은 2차대전 추축국(the axis powers)에서 가져왔다. 악(evil)은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과 군비 경쟁할 때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지칭한데서 가져왔다. ‘악의 축’(axis of devil), 이라고 하면 영미나 유럽 사람들은 저절로 히틀러, 무솔리니, 진주만 습격, 전쟁의 참상, 소련과 냉전시대가 떠오른다.
악의 축으로 세 나라가 지목되었다. 이란, 이라크, 북한으로 이들 세 나라가 테러를 지원했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세나라는 테러와 관계가 없고 알 카에다와 관계도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 황당했을 것이다. “내 이름이 왜 거기서 나오지?”
이란은 9.11 터지자 “알 카에다 나쁜 놈들”이라면서 오히려 미국에 동조할 뜻을 비쳤다. 이라크도 알 카에다와는 무관하다.
아들 부시와 네오콘의 생각은 알 카에다도 제거해야 하지만 이번 기회에 미국의 잠재적 적성국가를 혼내 주자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아프간 전쟁과 달리 이라크 전쟁에는 동맹국들이 반대했고 참전을 거부했다. 미국 말을 비교적 잘 듣는 캐나다조차 반대했다.
아버지 부시 참모들도 후세인이 제거되면 중동의 힘의 균형이 깨진다면서 후세인 제거를 반대했다. 미국은 약 5천명의 전사자를 냈고 약 1조 달러 전비를 썼으나 대량살상 무기도 없었고 알 카에다와 협력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얻은 게 있다면 실추된 미국의 체면이다.
이라크에서 머쓱하게 빈손 털어 쥐고 나오면서 미국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중동에 민주주의 인권 자유의 가치를 심어주어 민주주의와 평화의 뿌리를 내리게 만들겠다. 그러나 이 마저도 실패했다.
중동의 토양이 민주주의 실현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선거를 해서 너희에게 좋은 지도자를 뽑아라.” 그러나 아랍 대중들은 인권 존중하고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온건한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고 권위주의자, 이슬람 원리주의자, 대미 강경파를 선택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강경파 하마스가 의회에 진출했고 이집트에서는 극단주의 무슬림 형제단이 정권을 잡기도 했다.
미국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흘러가자 그제서야 미국은 “중동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다른 눈으로 중동을 바라보았다. 힘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우위로는 문제가 꼬이기만 하니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했다. 대표적 예가 이란과 관계 개선 및 핵 협상이다. 미국 대 이란의 1:1 협상이 아니라 일종의 다원주의적 발상으로 당사국 이란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영국, 미국, 차이나가 참여했다. 마침 새로 당선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중도 좌파 성향의 인물로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재선되었는데 그만큼 이란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즉, 이란 민중들은 개혁을 원했고 미국과 관계개선을 원했다.
길고 지루한 협상 단계를 거쳐 이란 핵문제가 20015년 7월14일 타결되었다. 이란이 다시 국제 사회에 나오고 정말 중동에 평화가 올까?
그런 기대는 트럼프가 대통령 되자 산산조각 났다. 그는 이란 핵합의를 세상 최악의 합의라고 비난하며 미국은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물주인 미국이 빠지자 핵 합의는 공염불이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핵 합의 복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란과 핵 합의에는 험준한 산이 가로 막고 있으나 꼭 넘어야 할 산이다. 이란이 정상국가로 국제 무대에 다시 선다면 국제정치 역학이 바뀌겠지만 9.11 이후 일련의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는 70년을 이어 온 루즈벨트-사우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사 등록일: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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