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의 기자수첩) ‘팁’ 문화, 반드시 개선되어야.. - 팁은 세금도 의무도 아니다
사진: 한국일보
처음 파리 갔을 때 르 프로코프(Le Procope)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 대혁명의 주역들, 나폴레옹이 단골로 드나 들었다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식당에 왔다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들떠서 팁을 안 주고 나왔다. 식당을 나선 후 깨달았는데 너무 늦었다. 순간 뒤통수가 간질간질했다. 다음에 갔을 때 계산서를 보니 봉사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유서 깊은 식당에 왔는데,”라는 생각에 약간의 잔돈은 놓고 나왔다.
문화란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의 총체로서 의식주, 언어, 풍습, 종교, 가치관 등이 축적되고 전승되어 세대의 세대로 전달되며 인간이 후천적으로 배우고 전달하는 모든 생활양식을 말한다.
팁도 그런 과정을 통해 캐나다, 미국에 정착되었다. 유럽에서 시작되어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며 팁 문화도 가져왔다. 팁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가설은 16세기 영국의 선술집, 찻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16세기 영국의 귀족들이 손님으로 초대되어 갔을 때 손님이 집 주인의 하인들에게 수고비를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점점 숙박시설이나 식당, 술집으로 번져 나갔다고 한다. 어떤 가설을 따르든 팁은 선의이고 고마움의 표시이지 강제적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캐나다 팁, 미국 팁의 정착
이런 관습은 19세기 들어서며 유럽의 상류층이 자신의 부와 관용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했고 유럽을 여행하던 캐나다, 미국인들이 보고 배워와서 이런 귀족적 관습이 사회전반에 전해졌다. 팁이 북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귀족 문화의 잔재로서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차별이라는 인식이 있어 팁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고 지금도 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어 팁을 안주는 용기 있는 사람도 있다.
팁이 북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캐나다와 미국은 차이가 있다. 캐나다는 미국보다 영국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많이 받아 처음에는 팁이 “고마움의 표시”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을 피해 많은 미국인들이 캐나다를 방문하며 점점 미국식 팁 문화로 정착되었다.
미국은 노예 해방이 되면서 흑인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는데, 식당이나 철도회사에서 흑인을 고용하면서 급여를 주지 않거나 아주 조금 주면서 손님들이 주는 팁으로 생활을 유지하게 했다. 이런 인종적, 경제적 착취 현상이 사회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관행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1960년대 정부에서 팁 최저임금(Tipped Minimum Wage)을 법제화해 제도적으로 서비스 업종은 일반 업종보다 최저임금을 적게 받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캐나다도 서비스업종 최저임금과 일반업종 최저임금이 달랐다. 가령 앨버타 주의 경우 2015년에 일반업종 최저임금은 $12.20, 서비스업종 최저임금은 $11.20이었다. 임금 차등은 2016년 폐지되었고, 다른 주들도 점차적으로 폐지해 지금은 퀘벡만 제외하고 다 폐지되어 동일한 최저임금을 받는다. 퀘벡은 현재 일반 최저임금 $16.10, 서비스업종 $12.90으로 차이가 크다.
손님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
팁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캐나다와 미국 모두 일반 업종과 서비스 업종의 임금 차등 지급은 고용주가 지불해야 할 임금을 손님에게 떠넘기는 구조로 고착화되어 손님들의 부담이 커졌다. 팁이 고마움의 표시, 선의의 표시가 아니라 점점 “팁은 반드시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변질되었다. 그래도 과거에는 10% 정도의 팁을 계산서와 함께 현금으로 놓거나 금액을 적어 계산을 했는데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태블릿 기반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일반화되어 직원 앞에서 18%, 20%,25%를 선택하게 되어 손님 입장에서는 압박감이 더욱 커져 강요된 선택이 되었다.
코로나는 전 지구적으로 사회제도, 인식,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 놓아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팁도 코로나가 변곡점이 되었다. 코로나를 계기로 서비스 업종의 발길이 끊어져 생활이 어려워진 서비스 업종을 돕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퍼지며 팁의 인플레 현상이 생겼다.
코로나로 인한 공급체인 붕괴는 원, 부자재나 상품의 수급 불균형으로 물가 앙등의 원인이 되었다. 치솟는 생활비에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은 팁 의존도가 심해졌고 손님 입장에서는 물가는 올라가는데 팁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졌다.
필자가 처음 이민 왔을 때는 팁이 10%-15% 정도였는데 이젠 18% 이상이 되었고 종전에는 팁이 없던 업종에도 팁이 생겨 팁 손님들의 압박감을 넘어 분노 수준에 이르렀다. “팁 때문에 외식 못하겠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고 손님이 줄어들면 업소는 업소대로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젠 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모두에게 불편한 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각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팁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분노를 나타냈다.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이 팁 없어도 생활할 만큼 공정한 급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즉 고용주가 정당한 급여를 지급하고 유럽처럼 서비스 요금을 고정시켜 가격에 반영하여야 한다.
최저임금 제도를 개선해 모든 노동자들이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생활임금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앨버타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5인데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시간당 $15 벌어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소비자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과도한 팁이나 Take-out, 혹은 뷔페에서는 “No”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행동이 필요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65%가 팁을 거부하는데 과거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팁을 없애고 가격에 서비스 요금을 포함하는 식당이 생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식당이 많아지기 바란다.
팁의 발상지인 유럽에서는 팁은 고마움의 표시, 선의의 표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계산서에 봉사료가 포함되어 있어 팁을 주지 않아도 무례한 것이 아니라 북미만큼 팁에 대한 압박감을 받지 않는다.
일부 식당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은근히 팁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건 유럽문화가 아니니까 거절한다고 해서 무례한 게 아니다.
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업체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정부, 업계, 서비스업종 종사자, 손님 개개인의 혼연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