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유럽 역사 순례 -네덜란드 편-김숙경 (시인, 에드몬턴)
김숙경 시인
(아름다운 운하와 특별한 공법으로 운하 위에 세워진 건축물
셋째 날
5월 15일 저녁 6시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해저터널 기차인 유로스타를 이용하였다. 해저터널로 기차를 운행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암스테르담 가는 기차를 1시간 넘게 기다렸다. 기차를 타고 준비한 김밥을 먹으며 4시간 반 정도 걸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유럽은 도둑이 득실거린다는 말을 듣고 우리 일행은 기차 짐칸에 둔 짐이 도둑맞지 않도록 고정 걸이로 즉 자전거 걸이로 쓰는 것을 준비해 갔기에 짐칸에 묶었다.
어둑어둑할 무렵 암스테르담역에 도착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현지 안내자는 프랑스 파리에서 3시간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가까이 있어서 2박을 암스테르담 부근에서 머물고 관광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안내자는 관광지마다 역사적인 설명을 잘해 주어 의미 있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역을 내리니 비가 내렸다. 한참을 걸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벤즈 전기차로 아주 편안하고 좋았다. 유럽은 대부분 전기차다,
전기 충전소도 잘 되어 있었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자전거를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나라다. 동남아시아가 자전거 천국인 것을 보았는데, 팅커벨은 경제가 어려운 나라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GNP가 높은 선진국인데도 국민 대부분이 자전거 메니아였다. 운하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를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다. 어려서 풍차로 유명하고 튜립꽃이 많은 나라로 알고 있었던 홀랜드가 바로 네덜란드였다.
한반도의 5분의 1 정도의 면적에 인구는 1700만 명 정도의 적은 나라고 자국어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입헌군주제로 현 국왕은 빌럼 알렉산더르다. 가톨릭이 28% 신교가 18% 그 외 종교와 무교다. 80%가 네덜란드 단일민족이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무역으로 잘 사는 나라다. 세계적으로 꽃과 풍차, 치즈, 초콜릿이 유명하다. 팅커벨은 초콜릿에 관심이 많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씨앗은 '신이 주신 열매'라고 한다. 14세기 카카오 열매를 차로 마셨으나 점차 아프리카 재배지에서 스페인으로, 유럽으로 확산하고 발전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들이 먹고 있는 고형 초콜릿이 만들어졌다.
한국 인터넷 티브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초콜릿의 역사와 비극을 알게 되었다. 입헌군주제로 17세기 유럽 귀족들이 즐기는 카카오 차를 보고 카카오 열매로 부를 쟁취하려고 1865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보다 75배나 넓은 콩고를 개인적으로 지배하여 카카오를 얻기 위해 아이들을 노예로 사들여 수확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팔을 잘랐다고 한다.
하루에 팔이 잘린 수가 1,000명이 넘었다니 그 잔악함에 놀랐다. 이번 여행에서 잘린 팔 동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인간의 헛된 욕망으로 희생된 넋을 위로하고 싶어진다. 17세기 서아프리카를 정복한 스페인에서 초콜릿 음료를 마시는 관행이 궁정이나 귀족문화 속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프랑스도 1615년 루이 13세와 결혼한 스페인 공주 안느 도트리쉬가 초콜릿을 혼수품으로 프랑스에 가져왔다. 그 후 1828년 초콜릿 산업은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네덜란드의 화학자 코엔라드반 후텐에 의해 마시는 초콜릿에서 고형 초콜릿이 등장하였다.
이런 고형 초콜릿으로 네덜란드는 초콜릿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세계적인 초콜릿 수출국이 되었다. 관광지에도 초콜릿 가게가 무척 많다. 팅커벨도 초콜릿을 선물용으로 샀다. 또한 네덜란드는 화해(꽃)가 발전되었고 낮은 지대의 땅을 풍차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운하로 인해 해상무역을 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뜻은 '낮은 땅'이란 의미가 있다.
해수면 아래의 땅이다. 저지대다 보니 바다나 강의 범람에서 벗어날 수 없어 사람들이 살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댐을 쌓고 풍차를 돌려 바닷물을 밖으로 빼내어 살아갈 땅을 마련했다.
지금 네덜란드 국토의 1/4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땅이다. '간척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시의 이름이 담(DAM)으로 끝나는 것도 강둑을 따라 건설된 댐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이 생겨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스테르담도 암스텔강을 가로지르는 댐이란 뜻이다. 암스테르담은 17세기 초,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상인들에 의해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졌다.
넷째 날
네덜란드 잔세스카스 나막신공장과 치즈 공장과 풍차 마을을 관람하였다. 잔세스칸스는 노트르홀란트주 잔담 인근에 있는 마을로 네덜란드어로 "잔 강의 보루"를 뜻하는데 이는 네덜란드 독립 전쟁에서 네덜란드 군대가 스페인 군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잔 강에 요새를 건설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지어진 풍차, 목조가옥 등 목조건축물과 함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막신공장, 치즈 공장을 관람하였다.
과거 아름답고 잘 사는 나라의 역사적인 것을 관광 상품화하였지만 지금 세상엔 나막신도 풍차도 사라져 가고 IT 발달로 풍력발전소를 세계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편한 운동화와 구두를 신으니 나막신과 풍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을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나막신 보존을 위해 건설한 공장이라 하니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이 좋아 보인다.
다만 치즈는 아직도 사람들의 먹거리로 사랑받고 네덜란드 치즈 수출은 대단한 국익을 가져다준다. 우리 일행은 자유롭게 산책하고 상점에 여러 가지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나막신 공장에서는 그 공정 과정을 보았고 특이한 나막신을 신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웠다. 팅커벨은 시범으로 만든 방금 나온 젖은 나막신 하나를 샀다. 집에서 말리고 그림을 직접 그려 걸어두고 싶어서다. 의미 있는 나막신이 될 것이다.
암스테르담은 도심 곳곳이 물길로 연결된 '운하의 도시'다. 운하는 인공적인 물길을 말하며 내륙 깊숙이 배가 다니고 배수와 용수를 위해 사람이 만든 수로다. 이곳의 운하는 165개로 길이도 수 천km에 달한다. 운하 주변에는 정면이 좁고 길쭉한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우리 일행 여행 옵션으로 운하 크루츠 투어를 했다.
르네상스풍의 좁은 집들과 물 위에 떠 있는 수상가옥도 신기한 풍경이었고 운하를 잇는 다리도 정말 멋스러웠다. 선실에서 이어폰을 꽂으니, 한국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내 조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지구는 신이 창조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창조했다.'는 유명한 말은 그들의 자부심을 잘 드러낸다. 생존을 위해 물과 싸운 역사다. 그 능력과 의지가 감탄스럽다.
이어 우리는 암스테르담 딤 광장으로 갔다. 딤 광장은 13세기 암스텔강 둑의 붕괴로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딤 광장에는 왕궁과 시청, 박물관, 그리고 14-17세기 상인들이 각자의 부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이루어졌다.
아름다운 광장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무역이 중심이 되어 부자가 된 무역상들이 서로 경쟁하듯 멋스런 건축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암스테르담 딤 광장의 건축물이 아름답고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었다.
딤 광장의 왕궁과 바로 근접해 있는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신교회(Nieuwe Kerk) 성 카트리나와 성 마리에게 봉헌되어 '성 카트리나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을 방문했다. 프랑스 고딕 성당들의 영향을 받아 1400년대 초에 지어진 교회로 두 번의 대화재는 피했으나 하수도 공사를 하던 인부들의 실수로 일어난 화재로 건물 전체가 타버려 몇 번의 복구작업으로 지금 교회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는 왕족의 대소사를 비롯한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담당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교회는 구교회(Oude Kerk)다. 1366년 무역상들과 선원들이 수호자인 미라의 성 니콜라스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을 시작하여 1566년 종각과 첨탑을 끝으로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카톨릭 성당이었지만 지금은 개신교 회당으로 바뀌었다. 중세까지는 암스테르담 대표적인 교회의 역할을 담당했으나, 신교회가 완공됨에 점차 역사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암스테르담 딤 광장 한가운데에는 현재 왕이 거주하지는 않지만, 네덜란드 왕족들이 이곳을 방문하면 거주하는 궁전이며 외국 귀빈들을 맞는 왕실의 접견 궁이자 왕실의 중요 행사가 치러지는 왕궁이 있다. 1648년 짓기 시작하였고 시청으로 쓸 목적이었다.
설계자 아콥 반 캄펀은 고대 로마 건축 양식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이 건물 중앙의 높은 돔 지붕과 아치형 기둥 등 로마 건축의 특징이 나타나도록 지었다고 한다. 딤 광장을 빛내는 건축물이다. 아름다운 딤 광장이라 말하는 것도 이런 건축물이 있어서일 것이다.
분위기 있는 역사적 건물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도 좋지만 오랜 전통의 건물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마침, 게이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남자들이 여자가 되어 알록달록한 의상으로 거리를 행렬하는 모습이 팅커벨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음악과 낭만으로 물든 딤 광장엔 관광객이 홍수를 이루고 있어 여기서도 들끓는 도둑을 조심하라고 한다. 왜 유럽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을까? 화장실도 너무 불편하다.
유료 화장실이 대부분이고 쉽게 사용할 수도 없어 유럽 여행의 단점이라 생각한다. 한국과 캐나다와는 너무도 다른 유럽의 화장실 문화가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
네덜란드는 대마와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다. 그래서 게이들이 유독 많다고 들었다. 오늘 게이 행렬을 보니 참으로 이상한 나라로 느껴진다.
딤 광장은 하루 평균 25개의 공연이 열리는 유럽에서 가장 힙한 도시다. 너무 사람들로 북적이고 노랫소리 등 시끌벅적하여, 딤 광장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 같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