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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에 대하여_목향 이 명희(캐나다 여류문협)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큰 호수가 있다. 이순이 가까워지면서 건강하게 살려고 몸에 좋은 목록을 만들었다. 일정표에는 동네 호숫가 걷기도 있다. 길에 눈이 덮여 있거나 빙판일 때를 제외하곤 남편과 열심히 걷는다.
그런데, 겨울에도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철새들을 종종 목격한다. 추운 날에도 서리를 맞으며 웅크리고 모여 있다. 이러한 광경을 보면 얼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해마다 무리가 떠나지 않고 호숫가를 맴도는 것을 보고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생태계가 무너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숫가 근처 마이클이 창고를 내주지 않았는데도 조류들이 영하 20도 이상의 추위에 견딘 것이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조류들이 추운 겨울을 나고 생존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살얼음이 있는 호숫가에서 겨울을 지낸 철새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가 있다. 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뻐꾸기 소리보다 더 청명한 ‘쪼로롱’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들으면 봄이 감지된다. 호수에 청둥오리가 둥둥 떠다니고, 주변에 오리가 모여들면 봄이 온 것이다.
용감한 철새들의 겨울 버티기 말고도 기이한 현상이 목격된다. 수컷끼리 다정하게 물가에서 헤엄쳐 다니고 짝을 이루고 있다. “쟤들이 동성애 하나?” 무심히 넘겼는데 하루는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는데 내레이터의 설명이 요즘엔 동물이나 새들이 개체 수의 부족으로 짝을 찾지 못하면 동성끼리 잘 지낸다는 것이다.
인간도 태어날 땐 성별이 분명한데, 자라면서 신체의 변화로 성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성 소수자가 되는 것인데, 생태계의 파괴처럼 인간의 본질에도 파괴가 온 것이다. 임신한 엄마가 변형된 음식이나 이상 성분의 약을 복용했을 때 성의 변화가 일어나 여성에서 남성,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징이 변한다고 한다.
환경이 오염되면서 순리를 벗어난 치명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눈앞의 인공호수와 갈대숲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철새들의 겨울나기, 청둥오리들의 동성애, 쪼로롱 수컷 새의 일부다처가 인간 세상의 복사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태계의 파괴가 단순히 자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 세대는 사회가 빚어낸 신조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으니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변질된 상황이 많다.
한참 어리광을 부리고 사랑받을 아이가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경우다. 똑똑한 게 문제다. 부모의 영재교육으로 남보다 월등하지 못하면 스스로 용납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 어떤 청년은 사랑했던 애인을 죽인다. 애정 결핍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다. 자존감이 상실된 채 자존심이 열등감으로 발전한 사례다. 사랑이 왜곡돼 저지른 사고다. 더 극악한 일은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을 생매장하는 어미도 있다. 조현병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이들의 본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가당치도 않은 일들을 접하면서 이것은 순전히 자연의 순리대로 살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파괴되는 자연과 인간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겨울에도 떠나지 않는 철새에게서 심각성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저 신기하게만 여겨지니 말이다.

남녀의 비율에 제동이 걸린 청년들도 있다. 밴쿠버엔 여자가 많고 토론토엔 남자가 많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우리 애를 토론토로 보내라고 한다. 1.5세인 딸이 두 나라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중인데 남자까지 찾아야 한다니 안타깝다.
태어난 곳이 뿌리인데, 15세 이후에 왔으니 한국 정서가 몸에 배어있고, 이곳에서도 15년 이상 살다 보니 사고방식이 서구 스타일로 부모와 자주 부딪친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문화에 적응이 되어 서로를 배려하게 된다. 철새나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사람도 나이를 불문하고 귀향본능이 있다. 향수병이 생겨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예다.
이민을 오면 두 가지 사례가 있는데 얼추 적응하면서 뿌리를 내리는 부류와 화합하지 못하고 싸우다가 파경을 맞는 부류다. 이렇다 보니 병이 도지는 사람들은 필시 고국 방문의 처방이 필요하다. 반면 철새형 인간도 있다. 젊어서 유학 왔다가 귀국하지 않고 타국에서 텃새로 살아간다. 겨울에 남아있는 철새처럼 그들이야말로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무서운 병이 있다.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젊은 사람도 남편과 자식을 알아보지 못한다. 치매 환자의 증가로 요양원을 찾는 가족이 해마다 늘어난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 복잡한 시대를 살아서인지, 마음의 병이 많다.
옛날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갔을 병들, 공황장애나 우울증이다. 욕심을 버려야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던 여정을 멈출 줄 알아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건강이 나빠진 후 깨달은 일이다. 남편과 호수 근처를 걷는 시간은 건강의 시간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현재의 감사함을 잊지 않았을 때 부부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신문발행일: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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