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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의 캘거리 관찰기] 워홀부터 이민, 2세들의 오늘 - 1세대의 정착부터 2030의 도전, 1.5·2세대의 정체성까지

캘거리 다운타운 전경 (사진 : 이정화 기자) 
(이정화 기자) 2026년 하반기, 캘거리를 감싸고 있는 고물가의 터널 한복판에서 가장 생기 있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들이 있다. 이 도시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한인 동포들이다.

과거 캐나다 주류 사회의 눈치를 살피던 낯선 이방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지인들이 먼저 한인 식당과 마트의 매력에 반해 찾아오고, 캘거리 최대 축제 ‘스탬피드’의 푸드트럭 현장도 동포들이 활발히 누빈다.

동네 주유소 편의점에 불닭소스가 놓이고, 글로벌 패션 브랜드 'ZARA'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나 블랙핑크 제니가 등장한 옷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수퍼스토어엔 한국 식품이 넘치고, K-드라마엔 로키의 풍경이 조명되는 시대다.

캘거리에서 만나는 한인들의 모습은 이제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생의 새 챕터를 여는 사람부터 잠시 머물며 치유를 얻는 이,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거나 뜻밖의 길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이까지. 저마다의 보폭과 사연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 '로키에서 찾은 삶의 속도' 이민 1세대의 독백

한국의 치열함을 뒤로하고 안착한 1세대의 삶, 그 안엔 도전과 적응, 여유와 향수가 어우러진다.

서울 종로구의 직장에서 쉼 없이 서류와 싸우던 A씨(50대·우버 기사)는 15년 전 사표를 던지고 캘거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4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 마주한 이민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쓰고 달았다. 언어 장벽과 낯선 환경 속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우버 핸들을 잡는 일이었다.

“처음엔 아내와 자식도 있는데 안정적인 회사를 때려치운 게 아깝지 않냐는 소리도 들었고, 온종일 운전석에 앉아있을 땐 몸이 쑤시기도 해요. 하지만 도로를 달릴 때 펼쳐지는 로키산맥 실루엣을 보면 서울의 빌딩 숲과 달라 가슴이 뻥 뚫리죠. 한국과 이곳의 스트레스는 결이 달라요. 지금은 행복합니다.” A씨는 이제 캘거리 도로 위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반면 20대 초반 밴쿠버 워홀러로 시작해 캘거리로 넘어와 어느덧 마흔 중반의 베테랑 가장이 된 B씨(45)의 정서는 더 복합적이다. 한국 조직 생활의 고달픔을 알기에 이곳의 워라밸을 사랑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향수는 짙어진다. “비가 내리면 포장마차의 칼칼한 안주와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던 옛 친구들이 그리워져요. 가슴 한구석이 이따금씩 쓸쓸하고 아이들이 다 크면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거예요.”

한국의 치열한 경쟁 사회와 교육열을 피해 이주해 온 1세대들의 사연도 다채롭다. 고국에선 교사였으나 여기선 초밥을 말고 있다는 한 동포는 "어쨌든 캘거리이기에 지금의 일과 삶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20년 넘게 살다 보니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희미해진다"는 베테랑 동포부터 "아이가 영어를 잘 못하는 나와 깊이 소통하지 않아 서글플 때도 있지만 아이가 이곳을 좋아하니 나도 머문다"는 가슴 뭉클한 고백도 있었다. 또 "외국 살이의 꿈을 50대가 넘어서야 실현했는데 모든 것이 새롭고 좋기만 하다"며 눈을 반짝이는 시니어 이민자도 존재한다.

이들 선배 세대의 곁에는 캘거리의 매력에 반해 이주까지 직진한 청년들이 있다. 다운타운 한복판에 카페를 차려 좋은 반응을 얻은 탄력으로 최근 한인 편의점까지 개업한 C씨(30)와, 요식업에 뜻을 품고 차이나타운에 중식당을 열어 힘차게 달려가는 D씨(31)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앞선 세대의 조언을 흡수하고 젊은 감각을 더해 동포사회의 든든한 허리이자 미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2030 워홀러의 청춘 스케치' 불안과 설렘 사이

동포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젊은 새내기들의 일상은 여느 세대보다 드라마틱하다. 낯선 타지 생활이 주는 짜릿한 해방감 뒤편에는 현실의 그늘도 공존한다.

캘거리 워홀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D씨(30)의 목소리엔 확신이 배어 있다. “한국에선 늘 비교 속에 나를 가뒀지만 여기선 낯선 환경에서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이 도시 특유의 느긋함과 조건 없이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들이 제 가치관을 바꿔놓았어요.”

도착 직후 “할 것 없는 심심한 동네”라며 투덜대던 E씨(24)는 주말마다 밴프와 카나나스키스 등 대자연을 누비더니 결국 비자를 연장했다. 낯선 땅은 때로 절박한 청춘들에게 가혹했다. 현지 사정에 어두운 점을 노려 달콤한 말로 피 같은 정착 자금을 가로채는 유학·이민 사기 피해는 여전히 동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이다.

첫 타지 살이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일찌감치 한국행을 택하거나, 커리어를 좇아 밴쿠버나 토론토 등 타 도시로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반대로 이곳 생활에 매료돼 귀국 후 다시 준비를 거쳐 SAIT(세이트) 등 현지 대학에 진학해 미래를 설계하는 청년들도 있다.

갈수록 높아지는 비자 장벽 탓에 억지로 귀국길에 오르는 청춘들도 많다. 그럼에도 최저시급의 한계 속에서 투잡, 쓰리잡을 뛰며 악착같이 버텨내는 이들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어느새 영주권이라는 묵직한 목표를 품고 정착 모드로 전환한 2030 청춘들의 치열한 생존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캘거리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 '가슴으로 한국을 배운 아이들' 1.5·2세대 이야기

7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캘거리로 이민 와 올해 스무 살이 된 F군. 고국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고 방문 횟수도 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최신 트렌드에 빠삭하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소셜미디어로 K팝 신곡 챌린지를 즐겨보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한인 노래방으로 달려가 한국 힙합을 부른다. “생각은 영어로 하지만 제 머릿속은 언제나 한국과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어요. 예전과 달리 지금은 주변에 한국인 친구들이 더 많아요."

캘거리에서 나고 자란 G씨(35)는 한국말이 서툴다. 겉모습만 아시안일 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캐나다인으로 성장했지만 서른을 넘기며 일상 곳곳에 배어 있는 한국적인 정서를 깨닫곤 한다. “말은 못 해도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예의 있는 제스쳐 같은 것들은 잘 알고 있죠. 어릴 땐 주류 사회에 섞이려 애썼다면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요."

최근 소설 '유산(Inheritance)'으로 데뷔한 한인 교포 제인 박(Jane Park) 작가의 행보 역시 이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이민 1세대와 2세대를 관통하는 삶의 궤적과 정체성의 고민을 섬세하게 담아낸 그의 서사는 캘거리 현지 독자들에게도 묵직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이들 모두 몸은 고국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마다의 방식과 언어로 가슴속에 한국을 새기며 자라나고 있다.

■ '서로의 내일을 향한 응원' 진화하는 동포 사회

이들의 이야기는 이방인의 생존기가 아닌 캘거리의 오늘을 빚어내는 주역들의 궤적이었다. 1세대의 단단한 뿌리, 2030세대의 치열한 활력, 그리고 1.5·2세대의 유연한 정체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한인 사회는 여느 때보다 입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고, 새로운 세대가 자리를 잡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도시와 기회를 찾아 떠날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저마다의 보폭으로 당당하게 캘거리의 하루를 채워가는 동포들. 로키산맥 아래 각자의 자리에서 찬란한 내일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그들의 묵묵한 걸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뜨거운 응원이 되고 있다.

기사 등록일: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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