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김기택 외 출판사:소울앤북
<표지사진> 김기택 시인의 수식어 ‘아직도 청정한 선비의 풍모’ 이번에는 특별한 책을 소개한다. 필자가 동화 작가이다 보니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책을 소개 해 왔다. 하지만 문학인으로서 다양한 장르를 소개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의미 있는 책을 소개하기로 했다. 필자는 김기택 교수의 수업 시론과 시 창작 등 여러 과목을 수강했다. 정년퇴임을 한 김기택 교수의 퇴임 기념 집으로 ‘김기택 시의 표정과 몸짓 《고요한 수다 활발한 침묵》’을 상재했다. 시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발자국 읽기’에서 동료 교수였던 김종회 교수는 ‘아직도 청정한 선비의 풍모’라는 수식어로 그를 극찬했다. 서두의 시작은 ‘서양 사람들이 ‘신사’라고 하는 어휘를 동양 문화권에 적용해 보면, ‘군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두 언어는 겉모양의 우월함을 뜻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학식과 인품을 겸비한, 완전체 지향의 인간형이라는 함의가 잠복해 있다.’ 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요한 수다 활발한 침묵》 속 작품이 마냥 선비적이 아니라 사물을 보고 체험하고 그 사물의 표정 하나 놓치지 않고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 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린 노희준 교수는‘김기택의 시는 ‘시각적인 충격이었다. 그의 작품은 시가 아니라 한 폭의 그림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수채화는 시간예술이라 한 번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그의 시는 수채화처럼 한 번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문장 같았다. 그의 시는 연속적인 시간 위에서 흘러가는 세계였다.’
이렇듯 이승하시인, 조동범시인, 황유원시인등 국내에 내노라하는 시인들이나 제자들이 한결 같이 그의 시와 선비 같은 성품을 극찬했다. 시 창작 강의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선비에 가까웠기에 극찬이 낯설지 않다. 나에게는 은사님의 친필 사인 시집이 세 권씩이나 있다. 그는 후학들에게 말한다. ‘작품을 쓰되 재미있게 쓰라고, 독자들을 변화시키고, 독자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쓰라고.’ 말한다.
‘김기택 시의 표정과 몸짓’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고요한 수다 활발한 침묵》은 시인이 실제로 사무원에서 시인으로, 시인이면서 대학교수로 무대가 바뀌어 가는 역정에도 흔들림 없는 삶을 이어왔다. 할 말을 몸에 가득 지니고서도 표현을 할 수 없어서 그렁그렁 눈물을 간직한 채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소’라든지, 등에 커다란 알을 품고 엎드려 있는 ‘꼽추’등은 그가 추구하는 특별한 시적 대상이면서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라고 출판사 서평에서 말하고 있다.
김기택시인의 작품은 2015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두 작품 <우주인>_발표지『사무원, 창비』, <바퀴벌레는 진화 중>_『태아의 잠, 창비』 이 수록되었으며, 2016년<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2020년 수능<새> 기출문제, 2013년 평가원<멸치>등이 있으며, EBS 수능 특강2022, 23, 수능 완성2021에서 다루기도 했다.
《고요한 수다 활발한 침묵》에 수록된 한 편의 시도 놓치고 싶은 시가 없다. 그렇다고 다 실을 수 없으니, 대표시 두 편만을 골라 보았다.
(대표 시) 곱추/김기택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끔 등뼈 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태아의 잠』,문학과지성사,1991(p32~33)
<책속으로> 목차 여는 시(p4) 연보(p8) 1부 발자국 읽기 2부 다시 보는 시 3부 시 속의 삶과 언어 평론 4부 설렘, 후회, 잡생각 5부 수다예찬 소/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둥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p40)
김기택 시인은 경기 안양에서 출생하였으며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이 있고, 산문집『다시 숨 쉬는 그대에게』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며 경희사이버대학원 교수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한 편의 시도 놓치고 싶은 시가 없다.
끝으로 시인은 말한다. ‘몸속에 간직한 수많은 생각과 고통을 놀이로 바꾸어 드러내고 싶을 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할 때, 누구든 작품 안에서 마음껏 두들겨 패고 조롱하고 나면 후련 해진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서 대리만족으로, 시를 쓰면서 내 안의 것을 털어낸다. 하여 시를 많이 읽고 감상하고, 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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