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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강좌"?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게시물번호 1789 작성일 2009-10-13 19:18 조회수 2685
이단사냥은 종교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종교적 현상이라 함은 종교적 신념 체계와 관련된 권력관계를 의미하며, 사회적 현상이라 함은 주류문화에서 벗어난 것을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씨엔드림 교회광고 중단 및 교회 배포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기 신념을 드러는 것임과 동시에 권력을 사회속에 발휘하려는 것입니다. 아래 글은 작년에 알버타 저널에 실은 글인데 다시 올립니다.

이 광고 중단과 배포금지 사건에서 보듯이 종교는 사회의 일부이며 문화적 표현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와 담론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거나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적 인간, 사회적 인간, 종교적 인간이 됩니다. 이것을 단순히 종교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속의 권력의 문제로 보신다면 종교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도 이러한 사회적 담론에 함께 참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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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의 종교: 종교 권력과 “이단” 사냥
-아프리카

사교 모임에서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피하라고 한다. 왜 그런고 하니 종교와 정치는 기본적으로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라서, 어떤 형태의 대화도 상대방의 성향을 불가피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종교와 정치는 사람들 각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세계관)과 신념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세계관적 차이가 합리적 대화나 토론으로 도출되기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치에 지지하는 정파가 있듯이, 종교에는 소속된 집단이 있다. 이러한 정파나 종교집단이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사회적 드러남은 어떤 형태든지 사회적 관계를 표상한다. 이 중에서도 나와 신념 체계를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공격할 때, 기독교 전통에서 중요한 무기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이단 사냥” (heresy hunting)이라는 것이다. 이단 사냥의 전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종교 집단이 존재하는 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데, 한인 이민자 교회를 포함하여 한국 교회에서 유독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이러한 이단 사냥이라는 종교적 표현, 또는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1. 이단 사냥은 “타자”를 배척하므로써 내 집단의 정체성을 밝히는 과정이다.
“이단” (heresy; 異端)이라는 말의 짝패에는 반드시 “정통” (正統)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 종교 집단이 다른 종교 집단을 보고 이단이라고 했을 때는 자신의 집단을 정통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는 것이다. “정통” (ortho-doxy)이라는 말은 바른 가르침 또는 바른 신념을 의미한다. 정통의 맥락에서 볼 때, 이단은 잘못한 신념을 의미한다. 즉 바른 신념을 가질 때 만이 “바른 실천” (ortho-praxis)이 나온다는 입장이다. 정통이 이단을 정죄할 때는 이단은 그릇된 신념을 가졌을 뿐 아니라, 행동 역시 그릇된다는 논리를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정통이 이단을 비판할 때는 이단 종교는 사교 (邪敎), 혹세무민의 집단, 사이비 등의 꼬리표를 붙이게 된다.

그런데 왜 정통에게 이단이 중요할까? 이것은 정통이 이단을 정죄할 때 만이 자신만의 울타리 (boundary)를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적으로 극우 반공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 진보적인 사람을 보고 “빨갱이”라는 “낙인찍기” (labelling)를 했을 때, 이것은 모든 진보적인 신념이나 실천을 극렬한 공산주의자라는 범주에 넣음으로써 아군 (us)과 적군 (them)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정통이 실제로 “바른 신념”을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힘 (권력)으로 “다른 신념”을 제거하려는 배타주의적 반응의 한 형태이다. 자기 스스로 “정통”이라고 하는 것은 남이 알아 주지 않은 자기 만족의 표출이며, 자기 정체성 (identity)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2.  왜 한국의 개신교에서만이 이단 문제가 중요한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영어 “heresy”라는 개념이 별로 사회적 효용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서구 사회는 다원성을 기본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소수의 기독교인을 제외하고는 “heresy”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cult”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한다. 이 컬트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종교 의례를 의미했는데, 후에 일반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은 종교 집단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로 진화되었다. 그런데 “heresy”라는 말이 서구사회에서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류 문화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의 90% 이상이 보수적인 신념체계를 갖고 있듯, 한국의 개신교 역시 무슬림에 버금가는 절대 다수가 보수/근본주의적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단 사냥은 강한 종교적 요소로 남아 있다.

그런데 사회적 맥락에서 왜 “이단사냥”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인고 하니, 이것은 기독교 근본주의를 드러내는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근본주의” (fundamentalism)란 무엇인가? 근본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화난 (angry)사람들의 사회적 반응을 의미한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맑시즘에 화를 내고, 다윈의 진화론에 화를 내고, 성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하는 성서 비평학에 화를 내고, 또 다른 종교나 종파에 대해서도 화를 낼 뿐 만 아니라 분연히 일어서서 공격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다른 종파를 공격하기도 하고 또 자기들끼리 이단이라고 서로 화를 내면서 교단을 깨고 나가거나 정죄를 하는 현상은 종교적으로 화를 낸 사람들의 모습인데, 이것을 개념화시키면 근본주의라고 등식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화를 낸 사람들은 다른 종교나 종파를 보고 이방종교니, 이교주의니, 사교니, 이단 박멸 등의 무시무시한 단어를 쓰면서 공격한다. 이런 반응 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신념체계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신념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이단으로 몰아 세우는 것을 보면 종교 전투병처럼 보이지만 자기 집단내의 연대 (in-group solidarity)는 무엇보다 강해서, 열심히 싸우다가도 공동의 적이 나타나면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면서 순한 양처럼 자기들끼리 잘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순한 양들이 적을 만나면 공격적 (militant) 형태로 표출된다. 이런 근본주의라는 배타적 신념체계가 주류가 되고 있는 한국의 종교적 토양 속에서 이단 규정을 받으면 끝장난다. 그래서 심지어 비교적 큰 종파라도 이단 규정에 무척 신경을 쓴다.

3. 배타적 경계 가르기의 편집증과 극복
사실 이단 사냥을 하는 집단이나 이단 정죄를 받는 집단이나 자기 집단적 배타성은 별차이가 나질 않는다. 신생 종교 집단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자기 조직 내의 연대나 결속이 강해야 되기 때문에 소위 “이단”들도 이단 사냥꾼들 못지 않게 배타적으로 된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챠드 호프스탯터 (Richard Hofstadter)는 사회적 갈등에 어떠한 중재나 협상도 불가능하다고 보는 신념 체계를 “편집증적 형태” (paranoid style)라고 하였다. 이 편집증에는 절대적 선과 절대적 악이 존재할 뿐 어떠한 중간 협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편집증적 의식 (paranoid mentality)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기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사람의 신념은 절대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자기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거나 반대로 절대적으로 다른 대상, 적 (enemy)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전자는 1992년 10월 예수가 재림하며, 휴거 (rupture)가 일어난다고 흰 옷을 입고 기도를 하면서 기다린 사람들에 해당된다. 후자는 자기와 다른 신념 체계를 가진 사람이나 집단으로 척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단 사냥에 나서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런 편집증적 사고나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은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거 또는 척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면 종교적 편집증으로부터 극복할 수는 없는가? 영어 “heresy”는 원래 희랍어αἵρεσις (하이레시스)로서, “선택하다” (choose)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기독교 전통의 옷을 덧입으면서 신념의 선택이라는 말은 척결의 대상으로 의미가 바뀐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다원성을 기본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단 척결의 신념에 빠지면, 결국 종교적 편집증에 빠진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신념이 ‘고백적’으로는 절대적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자기 객관화, 즉 자기의 신념이 도대체 어디쯤 되는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 (Peter Berger)는 현대사회를 “이단이 불가피한 시대” (heretical imperative)라고 정의하면서 문화와 종교의 다원성을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다양한 종교들은 이단이라는 척결 대상이 아니라 나와 다른 신념 체계일 뿐이다. ‘내’ 종교 집단에 속한 교인이나 종교 지도자가 공금횡령 등의 스캔들에 빠지면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되고, 소위 “이단”이 그러면 그 집단은 제거되어야 할 사탄이고 악마의 문제로 증폭된다 (amplified). 이렇게 나 살고 너 죽자라는 배타적 신념을 갖고 있는 한 종교적 편집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서로를 정죄하고 제거하려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 이단은 끊임없이 제조되며 (invented), 종교 문화는 더욱 더 험악하게 된다. 다원성은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것을 “관용” (tolerance)이라 한다. 관용은 자기를 돌아 돌아볼 줄 아는 자기 객관화에서 출발한다. 자기 종교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그를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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