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영화속 주인공처럼 장진영님이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서 그런지 이 영화가 더 애틋합니다.
* 위 그림은 장진영이 주연한 영화 "국화꽃 향기"의 화면캡쳐입니다. 박해일의 얼굴이 보이고 그 얼굴 아래 왼쪽에 법정 스님의 책 [山房閑談] (산방한담)이 보입니다. 재밌죠? 우연이 아니라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배열한 것이겠죠?
올해는 여름을 느낄 틈도 없이 늦가을에 이른 것같군요.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들을 해 보았습니다. 아래 노래의 화면은 국화꽃 향기의 주인공들인 장진영과 박해일의 화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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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과 무소유
우리나라 불교 스님 중에서 무소유라는 “화두”처럼 살다가신 분이 법정 스님이시라면 토를 다실 분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화두란 전 존재를 걸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스승인 조사 (祖師)가 제자에게 주는 자기만의 실존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의 선사들은 제자에게 화두를 주고, 그 화두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제자에게 법통을 주는데 이렇게 해서 법맥이 계승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아무런 연고나 배경도 없는 제자가 법맥을 이어받아 다른 제자들의 질시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전남대 상대 재학 중이던 1954년 입산 출가를 하는데, 서울의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1888-1966) 을 만나 대화한 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법정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습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습니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오래 동안 혼자 지내시다가 올해 입적하셨습니다.
법정 스님이 출가를 했을 때, 무슨 화두를 받으셨는지 모르지만, 그 분이 남긴 유명한 책 제목이 “무소유”였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그 철칙을 지키면서 사신 분이었으니까, 이것은 법정 스님의 평생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소유의 본질은 집착인데, 이런 집착이 강할수록 인간은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심리학자 Erich Fromme의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짐으로써 진정으로 “있슴”이라는 존재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찌의 전체주의나 무소유를 강조한 공산주의나 소유의 피폐함을 보여줄 현재의 한국의 4대강 개발로 이른바 삽질하는 한국 정부도 지나친 소유욕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불교의 세가지 보배를 불법승 (佛法僧)이라고 하는데, 불이란 깨달음의 궁극이요, 법은 가르침이며, 승 (상가)은 이러한 깨달음의 궁극에 이루기 위해 정진하는 승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 승가 공동체는 세속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출가한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무소유의 이상을 꿈꾸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모인 곳은 먹고 힘의 사용과 살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는 사실은 새로운 소유를 지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소유는 결국 우리가 갖는 집착 때문에 일어납니다. 어쩌면 법정 스님은 우리가 집착을 끊지 못하는 그 뿌리가 소유에 있다는 것을 너무나 깊이 간파해서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소유하려 합니다. 물질적 소유는 기쁨을 주며, 우리 삶에 안정을 준다고 믿게 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면, 다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프롬의 말처럼 “소유” (to have)가 존재 (to be; 있슴)를 압도하면, 우리는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소유를 통한 행복은 빼앗아야 얻어지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의 것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빼앗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면 최소한의 평화는 유지될 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불행하게 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법정 스님의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이 소유욕이 법정 스님 말씀처럼, 물질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종교심 (宗敎心)도 그것이 영성이건 종교성이건 지나친 소유욕으로 가득 차면, 종교심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화꽃 향기"의 주인공은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 치료를 거부하다가, 아기를 낳고 끝내는 세상을 떠납니다. 아기는 그녀가 남길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의 결실이자 마지막 삶의 끈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랑의 희생 공양이자 무소유였던 것이죠. 고 장진영님은 이 아름다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던 국화꽃 향기의 기억을 남기고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늘한 바람 속 향기. <내사랑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