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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삼층 세계관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8598 작성일 2015-11-28 08:22 조회수 2550

고대의 삼층 세계관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현대인들에게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고대 성서의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읽으면서 과학책 또는 역사책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성서는 은유적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성서를 바르게 해석하려면 성서 저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형식과 목적으로 성서를 기록했는지에 대한 성서 비평(역사 비평, 양식 비평, 문학 비평, 편집 비평, 전승사 비평, )이 필요하다. 창조론을 믿는 극소수의 과학들은 창세기 1-2장의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고대의 성서 저자들은 현대 과학 즉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에 대해 상상도 못했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이란 말과 그 개념은 17세기 이후 뉴톤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때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성서는 과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직 시적으로 기록된 신화적인 책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말한다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서에 솔직하고, 21세기에 하느님의 의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깨달아 알 수 있다.

 

기독교 성서 창세기 1장의 천지가 창조된 이야기 (참고: 창세기 2장의 인간이 창조된 이야기는 1장의 이야기보다 먼저 기원전 1000년 경에 기록되었다.) 는 대략 바벨론 유배시기 (기원전 587) 전후이다. 바벨론 제국의 등장으로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민족의 새로운 정체성과 민족이 단결할 수 있는 신앙이 필요했다. 따라서 성서를 재편집하고 새로운 하느님의 이미지를 정립했다. 이것이 창세기 1장의 역사적 배경이다.

 

창조주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오직 기독교 성서에만 있는 유일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형태의 신화(神話 Myth)는 고대 중근동 지역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학 형식이었다. 고대인들은 자연 현상들과 삼라만상에 대한 호기심들과 경이로움과 황홀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신화라는 문학적 장르를 사용했다. 창세기의 삼층 세계관은 당시 고대 중근동의 수메르 지역에 거주하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의 보편적인 신화적 세계관이었다. 또한 수메르 지역은 고대 중근동 신화들의 고향이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이 수메르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던 우르(Ur)였다. 아브라함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온 후에도 후손들은 여전히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 보편적이었던  삼층 세계관과 신화적 문화 속에서 살았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뿌리인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은 삼층 세계관의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의 세계관과 종교 역시 중근동 지역의 삼층 세계관과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1-2세기에 기록된 신약성서도 자연스럽게 고대 중근동의 삼층 세계관에 근거해서 기록되었다.

 

고대 삼층 세계관이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미친 몇 가지 실례를 소개한다. 5세기에 만들어진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학의 골격을 이루어왔다. 사도신경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고백한다.  그리스도론의 성격을 결정한 사도신경의 세계관은 갈릴레오 이전 사람들의 눈에 비친 삼층 세계관이다. 예수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잉태했다는 것은 바로 삼층 세계관에서 가질 수 있는 필연적인 표현이다. 즉 상층인 하늘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중간층으로 사람의 몸을 타고 내려온 하느님이 예수이다. 여기에서 성육신 또는 임마누엘 사상이 생겼다. 성육신한 예수는 인간의 영역에 들어왔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형되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삼층 세계관에 따라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올라 하느님 우편에 앉아 있다가 최후심판을 집행하러 다시 땅으로 내려와서 모든 인간들을 상층(천당)행과 하층(지옥)행으로 결정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종말론은 지극히 삼층 세계관적 신앙이다.

 

삼층 세계관이 기독교 신학에 미치 가장 심각한 영향은 이분법적 구원론내세영생에 대한 꿈이다. 고대인들은 보편적으로 생각하기를 상층에서 영생하는 신들이 땅과 하늘 사이를 마음대로 오르락 내리락하고, 중간층에는 유한한 생명의 인간들이 산다고 상상했다. 삼층 세계관의 고대인들은 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따라서 사도신경에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을 삽입했으며, 영생의 길은 예수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 것을 입술로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간단하면서 대단히 위협적인 공식이다. 그러나 우주 진화적 세계관에서 사람의 생명과 생애를 ‘산다 죽는다’ ‘구원받는다 징벌을 받는다’ 는 이원론적 표현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각 사람의 삶은, 한 인간의 현상 또는 한 인간의 운명의 현상 또는 한 인간의 존재의 현상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진화 이야기)에서 우리의 생명과 생애를 인간에게만 국한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우주의 모든 개체들은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체들은 소중하고 성스러우며, 어느 한 개체를 무시하거나 제외시킬 수 없다. 개체들이 모여 전체를 이룬 것이 우주이다. 한 개체의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다른 개체들과 전체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나 삼층 세계관적 신앙이 주장하는 최후의 심판은 오직 인간의 삶과 죽음에 국한시킨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살고 있는 땅 아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죽었던 몸이 부활해서 다시 살아나 상층인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우주진화 세계관적 신앙은 세계를 상중하 층으로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종말론적 최후심판이 없다.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이미 갈릴레오에서 시작되어 뉴턴을 거쳐 온 삼층 세계관은 아무 쓸모 없는 낡은 휴지로 전락하게 되었고, 세계를 상중하의 층없이 물질이라는 것이 활동하는 광활한 공간으로 보게 되었다. 오늘날 우주 진화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 가운데 신/하느님을 전제로 하는 사람은 없다. 생물과 무생물의 한계도 없어졌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로서 가치관이나 윤리 규범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리를 찾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써 두려움과 욕심없이 자유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선포했다. (참고: The Hidden Heart of the Cosmos: Humanity and the New Story, Brian Swimme)

 

우주진화적 신앙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그렇다고 인간 중심의 생명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양에서 특히 인도에 원초를 둔 불교에서는 생명을 모든 생명체들에게 확대시킨다. 우리가 말없는 생물들을 다 정복해 버리고 인간 중심적 사고로 내가 살기 위해서 다 먹어치운다면 생태계가 깨져서 인간도 살 수 없다. 놀랍게도 바울에게서 우주진화적 신앙을 볼 수 있다. 로마서 8 18절 이하에 생명의 지평을 인간 영역을 넘어서 모든 생명체들에게 확대시키고, 우주적인 생명, 우주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이 신음하고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면서 인간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참 인간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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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5-11-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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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은 저의 질문은 회피하고 다른 프레임를 만들어 조지려는 약간 고약한 이고를 갖고 계신 것 같지만, 잘 읽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내용의 오류를 인정하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구요. 남은 거짓이라고 하면서 본인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시는 버릇이 있는 것 같네요. 그냥 답변하면 될일을 이렇게 장황하신지 항상 궁금하구요.

삼층세계관은 불트만이 제기했고 늘봄님의 지적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예수는 삼층 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았나요? 늘봄님 말씀처럼 예수는 신도 아니고 그냥 인간일 뿐인데 당시 삼층적 세계관에서 자유로운 예외적 인간이었을까요? 바울도 삼층세계관을 갖고 있었던 같은데요? 자기 구미에 맞게 짜맞추는 절충주의적 표현은 사양합니다. 바울에게서 "우주진화적 신앙"이라...참 이해가 안되는군요. 예수도, 바울도 그냥 고대인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5-11-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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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궁금해서 그런데요.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로서 가치관이나 윤리 규범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리를 찾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써 두려움과 욕심없이 자유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선포했다."라고 하셨는데 프로이트가 어디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구체적 출전을 밝혀 주시면 깊이 감사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올림

fishlover  |  2015-11-2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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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조용한가 했더니 다시 또 시작 하시는군요. 드리는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하시고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 하십니다. 전철에서 외치고 다니는 사람과 별차이 없어 보입니다.

아프리카 님이 점잖게 에고가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 보다 더한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늘봄님께 맞는 단어가 없습니다.

100보 양보해서 늘봄님의 주장이 맞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말장난의 폭탄을 퍼 부으면 늘봄님의 뜻이 대중에게 전달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제가 보기엔 "어차피 시간은 남아돌고, 뜻이 전달되든 안되든 상관 없으니 공짜 게시판에서 실컷 말장난이나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니고 정말 진지한 판단으로 올리는 것이라면 정말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대책없는 분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동안 한 가닥 기대를 갖고 진지하게 답 글을 달았었는데, 무의미 하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물러갑니다. 이제 까다로운 질문자도 없어졌으니 잘 노십시요.


아래의 글은 늘봄님의 아랫글, "누가 예수를 죽였나"에 답글로 작성한 것인데 그냥 힘들어서 이곳에 같이 올립니다. 어차피 시간이 많으신 분이니까 어디서 읽든 상관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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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신앙은 간단합니다. 믿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더 소중합니다." 이 말이 바로 아래 문장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말씀 드립니다.

"지금 여기에서 죽는 순간까지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삶은 내가 100% 책임 진다는 확신으로 살면, 자유하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원함과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늘봄님은 이것이 자유자재로 됩니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되는 척 합니다. 그러나 마음 밑바닥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쓰레기 투성이입니다.

인간으로써는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절대자를 찾아서 그에게 의존하고 싶은 것이 믿음의 출발점 아니겠습니까?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지요...계속 잘 되는 것처럼 가장하지 않고..

만약 늘봄님이 이것이 자유자재로 된다면 늘봄님은 세상만사를 해탈한 살아있는 부처 비슷한 분이거나(그래서 우리 같은 범부가 감히 반박할 수 없는 명쾌한 해결책을 주실 수 있을 테고..)

아니면 자신의 밑바닥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없어 언제나 행복한 바보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만약 전자가 사실이라면 문제는 매우 간단합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만 제시해 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어렵게 고생하실 필요 없구요....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제가 제일먼저 달려가서 하나님처럼 모실 것을 약속합니다.


"님은 기도교인 뿐만 아니라 종교경계 넘어, 인종경계 넘어, ........대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늘봄님은 이 현재 세상에서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이나 늘봄님의 주장으로 미루어 볼 때, 늘봄신학(?)을 받아드리면 대안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이것이야말로 혹세무민 하는 사이비 종교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하물며 그 동안 많은 사이비 교주들이 실컷 우려먹고 버린 새로울 것도 없는 논리를 가지고요....그렇게 될 것을 기대하셨다면 매우 유아적 판단으로 보입니다.


99% 장담컨데 대안은 없습니다. 비록 이 세상 모든 종교가 다 없어지고 오직 늘봄신학만 가득한 세상이 온다고 해도 인간의 본능 밑바닥을 완전하게 청소하지 않는 이상 기대하시는 그런 대안은 없습니다.


"믿는 것 보다 어떻게 행동하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하셨는데, 무엇을 어떻게 믿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 에 따라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대상 없이 이렇게 막연한 진술은 오해만 불러 일으킵니다.

이미 교회 안에서도 믿음으로 구원받느냐 행위로 구원받느냐 하는 논란도 있고, 행동을 잘못하면 십자가 운동 같은 살인의 역사를 만들기도 하고요.

이런 말은 교회 다닌 지 2~3년 된 초신자 하고 많이 한 내용인데 목사님으로 은퇴하신 분한테 이런 말 하게 될 줄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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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tva  |  2015-11-2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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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진지한 종교적 탐구를 무례한 언어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런 폭력적이고 무례한 언어는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5-11-2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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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사이비" 나 "세뇌"라는 말입니다. 사이비라는 말은 내 것은 authentic하고 남의 것은 가짜라는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세뇌"라는 말은 인간이 자율적 이성을 갖고 있지 못하고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못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이비나 세뇌라는 말을 이단 사냥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단"이라는 말속에는 이 말을 사용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권력이 함의되어 있다고 보구요.

다시 돌아가서 그냥 제 질문들이 살아 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다음 단계로 토론이 넘어가거든요. 저는 늘봄님의 타자 배제와 타자 재구성의 과정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sattva  |  2015-11-2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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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하나님이라는 늘봄님의 책에 대한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과 교수의 추천사를 보

게 되어서 여기에 인용합니다.

사실 저는 기독교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유게시판에서 늘봄님의 글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토론의 진실함과 예의는 없고 자신들의 생

각과 다름을 설명하라는 강요와 언어의 무례함을 보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무례함 덕분에 늘봄님의 생각이 어떤 지를 알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깨달음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찾았습니다.


그 분이 삶을 바쳐서 쓴 책을 읽고 저에게도 많은 삶의 영감이 생기기를 기대해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음은 오강남 교수의 추천사입니다.

최성철 목사님은 ‘예수 세미나’ 회원으로 그리고 엄청난 독서량으로, 현재 세계 신학계의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목회자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랜 교리적 전통과 형식에서 해방되어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려고 하

는 그분의 용기입니다.

이 책이 설교집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무엇을 강요하는 그런 설교집이 아니라, 듣

는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들입니다. 새로운 신론, 새로운 기독론, 새로운 인간론,

새로운 교회론, 새로운 비전의 종말론 등 신학의 큰 주제들을 두루 다루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하는 21세기 기독교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말해 주는 네비게이터

와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질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목회자와 일반 신도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등한시하는 과학과 종교의

문제도 명쾌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과학을 무시하고 종교가 온전할 수 없고, 종교 없이 과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에 기여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동반자로서 함께 걸어갈 때에 우리의 신앙과 삶의 의

미와 목적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의 길입니다.” 새로운 과학시

대에 적절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 목사님은 한국 기독교 대부분이 배격하고 두려워하는 ‘종교다원주의’나 ‘만인 구원론’에 대해서도 분

명한 입장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믿기에 종교와 인종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

길을 보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현재 거의 암담할 정도의 한국 기독교 현실을 감안할 때 최 목사님의 이런 생각은 어느 면에서 감로수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부디 목회자나 신학생뿐 아니라 교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그리스도인, 기독교의 진수

를 알아보고 싶은 일반 교양인들이 이런 책을 통해 의식의 개변이 있게 되기 빌어 마지않습니다.

- 오강남(교수)

내사랑아프리카  |  2015-11-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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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교수님은 친절하시고 넓으신 분입니다. 제가 "약간" 편집하고 교정을 본 어느 목사님의 설교집 추선사를 오강남 교수님께 부탁드렸었는데 흔쾌히 그리고 잘 써 주셨습니다. 어쨌든 종교적 담론은 종교학이든 신학이든 입장이 다를 수 있고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름과 같음은 질문과 답변, 그리고 테제와 안티테제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도 한 과정이구요. 일단 게시판에 올린 글은 어느 주제든 활발히 논의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특히 polemical arguments는 뜨거운 주제가 될 가능성이 많죠. 종교는 이렇게 가야한다는 당위론적인 문제도 의미있는 일이고, 현 종교적 상황에 대한 이해도 의미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냥 제 질문들이 살아 있으면 좋겠네요".

fishlover  |  2015-11-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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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tva님께,

저의 댓글이 부정적 인상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래서 몇 개 안 되는 저의 댓글을 다시 한번 살펴 보았습니다.
표현의 신랄함은 보였을지 모르지만, 님께서 표현하셨듯이 "다른 생각을 설명하라" 는 강요를 한적은 없습니다.

저도 종교인 아닙니다. 종교학이니 신학이니 저하고 거리가 멉니다. 저의 나름대로의 신학적 견해가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천국과 하나님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 하고 죽은 뒤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조금 많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상식적이고 논리적 입장에서 늘봄님께 질문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했다가....또는 존재하지도 않은 하나님을 깨달아 이해했다고 했다가. 우리가 아는 상식적 국어의 범위를 넘어서는 표현을 했다가...때로는 기존의 모든 기독교신앙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했다가(사이비란 말은 안 했지만 함축된 의미는 자신만이 옳고 기존의 교회는 모두 틀린 것 처럼 표현하고..) 한마디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주장을 해 왔습니다.

여기 까지도 좋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의 자세로 답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기분 나빠 안 하신 것인지 못하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요. 여기서도 또 양보 하겠습니다. 저의 질문이 기분 나빠서 안 하셨다고 칩시다.

그런데 점잖게 질문하신 아프리카 님의 진지한 질문에도 한번도 답변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일관되게, 과거의 칼럼을 통째로 복사해 올리고는 답변이라고 던져주는 불성실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답변은 항상 회피 하시고요...

이런 분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는 Sattva님께 맡기겠습니다. 기독교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으니까 그 동안에 진행상황을 잘 안보셨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늘봄님의 주장이나 아프리카님의 질문 등에 관심을 같고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봄님의 칼럼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논리적이고 정리된 사상을 읽을 수 있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저 보다 훨씬 인내력이 좋으신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오강남 교수가 이 책을 다 읽고 추천서를 쓰셨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래의 문장입니다. 의심스러우시면 아래문장을 늘봄님께 보내서 동의하시는지 물어보면 대번에 아실 수 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분이 조건없는 사랑을 주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믿기에 종교와 인종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Sattva님의 부정적 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P.S. 바로위, 아프리카님의 마지막 문장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sattva  |  2015-11-2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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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늘봄님이 쓴 글을 보면서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거나 무책임하게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글을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예 읽지를 말던가 아니면 정화된 언어를 사용하던가

하시가 바랍니다. 토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아예 질문도 하지 말고 무시해 버리면 될 일입니다.

저는 늘봄님이 그렇게 상대방을 비방하고 무례한 언어를 사용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비아냥 거리는 글을 쓰면서 답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답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정말 늘봄님의 논리에 관심이 있으면 책을 사 보시던가 그 분이 쓴 글을 진지하게 찾아서 보시던가 하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질문한 내용이 그 전에 쓴 글에 있으면 그 글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냥 가십으로 글을 읽고 있다면 그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고 무례한 발언을 해서도 안되

는 것이겠지요.

여기에 댓글을 달지 않는 독자들도 글을 쓴 사람들의 인격을 보고 있습니다.

그 점 아시고 예의를 갖추어서 글을 쓰던지 아니면 불필요한 물고 늘어지는 질문이나 비아냥거리는 글을

씀으로서 자신의 인격을 실추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 늘봄님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글을 읽지를 말던지 아니면 합당하고 논리적인 토론을

하시기를 권할 뿐입니다.

늘봄  |  2015-11-2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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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한 번 자유게시판의 토론방식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올리는 글에 대해 저의 개인적인 Ground Rule 을 정했습니다:

저의 생각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던지는 시비성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공격적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다른 독자들이 찬반의 의견을 공정하게 들을 수 있도록 왜 반대하는지, 반대하는 의견을 논리적으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흠잡으려고 하지 마시고, 저의 생각과 다른 생각 또는 더 좋은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자유게시판 토론이 성숙해지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교실에서 담임 선생이 학생을 심문하는 식의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사실상 여러차례 시비성, 공격성, 흠내기 질문들을 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저의 규칙을 밝혔습니다.

저의 생각이 말같지 않으면 죄송하지만 그냥 불쌍히 들어 주시던지, 아니면 모른체 하십시오. 자유게시판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하게 건전하게 발표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저의 인내가 부족한 점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fishlover  |  2015-11-2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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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tva 님께, 설명의 편의를 위해 Sattva님의 글에 따옴표를 치고 그 밑에 답변을 달았습니다. 참고바랍니다.

"저는 늘봄님이 쓴 글을 보면서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거나 무책임하게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논리적 오류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므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답변을 회피하고 있는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까지 답변을 제대로 하신 적이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글을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예 읽지를 말던가 아니면 정화된 언어를 사용하던가 하시가 바랍니다. 토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아예 질문도 하지 말고 무시해 버리면 될 일입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뭔가 기대를 했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했었습니다. 정화되지 못한 언어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니까요. 그런데 그것 아시나요? 맞받아 싸우는 사람보다도 완전무시 하는 사람이 더 밉다는 것을요... 눈에 안보이니까 좀 다르긴 하겠지만....

"저는 늘봄님이 그렇게 상대방을 비방하고 무례한 언어를 사용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비아냥 거리는 글을 쓰면서 답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답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무례한 언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례한 신학적 논리는 엄청 사용했습니다. 죄질로 따진다면 저는 생계형 범죄입니다. 늘봄님은 무슨 범죄에 비교 될까요? 저에게는 좋습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님은 한번도 비아냥 거린적 없습니다. 그럼에도 진지한 답변 하신적 없습니다.

"정말 늘봄님의 논리에 관심이 있으면 책을 사 보시던가 그 분이 쓴 글을 진지하게 찾아서 보시던가 하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질문한 내용이 그 전에 쓴 글에 있으면 그 글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논리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에 글을 올렸기에 이곳에서 질문을 한것이고요. 답변이라고 옛날 글 복사해서 올린 글에 답변이 있는 줄 알고 열심히 찾아 봤는데 없었습니다.

"그냥 가십으로 글을 읽고 있다면 그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고 무례한 발언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겠지요".:

가십으로 읽지 않고 진지한 마음으로 읽었기에 집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댓글을 달지 않는 독자들도 글을 쓴 사람들의 인격을 보고 있습니다. 그 점 아시고 예의를 갖추어서 글을 쓰던지 아니면 불필요한 물고 늘어지는 질문이나 비아냥거리는 글을 씀으로서 자신의 인격을 실추시키지 마시기 바랍니":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니까요. 대신에 늘봄님께도 전해주세요. 이번처럼, 그 어렵고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주제를 3개씩이나 연속해서 띠워 쓰기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읽어내기도 어려운 장황한 글로 독자들을 우롱하는 인터넷상에 글쓰기 예의도 갖추어 주십사고요.

인격이 아니라 글격을 보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3개의 글을 찬찬히 살펴보시죠. 이것이 과연 어려운 신학적 문제를 일반대중에게 이해시키려는 성실함을 갖춘 전직 목사님의 글이라고 판단되시는지?

"정 늘봄님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글을 읽지를 말던지 아니면 합당하고 논리적인 토론을 하시기를 권할 뿐입니다".:

Sattva님께 솔직하게 묻겠습니다. 만약에 동네 사랑방에 누군가가 매우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대자보를 이벽저벽 붙혔다고 생각해 보세요. Sattva님은 그냥 "생각이 달라!!" 라면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꼭 찍어서 말하진 않았지만 그 대자보는 그 자리에 있는 Sattva님도 목표로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나마 동네 사랑방 에서는 개무시 하고 친한 사람끼리 둘러앉아 고도리라도 치면 됩니다. 그런데 이곳은 오로지 글로써만 예기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 입니다.

동네 사랑방에서 급진적인 예기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지극히 조심해서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네 사랑방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예절도 중요 하지만 사랑방 손님들의 입장을 배려하는 주제발표의 예절도 분명히 있습니다.

"내맘데로 쓸테니까 싫어면 보지마" 식으로 자유게시판의 자유가 원글 저자에게만 무한대로 있다고 착각 하시는것은 아니겠죠.

반복해서 말이지만 저야 신학적 토론을 할 자격이 없어서 무시한다고 쳐도 신학을 전공하신 아프리카님의 토론제의에도 성의 있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늘봄  |  2015-11-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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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유게판에 올린 글들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과 교회 안에서 방황하는 분들에게는 이해하기 대단히 어렵고, 심지어 자신들의 믿음을 욕되게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마음이 열린 분들은 교회 안밖에서 막혔던 가슴이 확터지는듯한 신선함을 느낄 것입니다.

저의 글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빈정대도 좋고 저를 협박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게시판에서는 저의 글에 반대하시려면 왜 반대하는지, 반대하는 욧점들을 제가 주장하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늘봄의 생각에 반대한다고 정정당당하게 천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신학과 신앙과 생각을 밝히면서 저를 공격해야지 무작정 이게 무슨 소리냐, 말도 안된다, 고 불평하면서 원색적인 인신공격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저의 생각이 무식한 소리라면, 부디 자신의 소중한 믿음과 신앙과 사색을 저의 글을 기회로 삼아 독자들에게 발표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자면, 삼층 세계관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저의 생각에 반대하시면 어떤 문제점들을 반대하는지, 왜 반대하는지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한 질문 (사실은 이것이 질문이 아니라 비아냥, 욕설, 공격)은 삼가해야 합니다. 비단 저의 글 뿐만아니라 다른 분들의 생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Enough is enough!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저와 토론하시려면, 먼저 자신의 신학과 철학과 믿음을 밝히시고, 그 다음에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는 알고 있으면서도 시비걸기 위한 질문은 사양하겠습니다. 더욱이 점잖치 않은 언어에 대해서는 일체 답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늘봄  |  2015-11-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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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신의 생각을 변론하고나서 질문하는 방식의 토론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사업상의 거래를 할 때에도 왜 내가 값을 올리는지, 왜 값을 내려야 하는지, 쌍방이 서로의 타당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과 동일합니다. 무작정 값을 내려라, 집어쳐라, 듣기도 싫다, 로 시비를 걸면 토론의 성사는 깨지고 맙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5-11-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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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하나의 포스트로 늘봄님께 질문을 드렸는데 답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포스트에서 토론의 본질이 misleading될까 한 말씀 더 드립니다. 아마 늘봄님께 질문과 문제제기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 제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늘봄님은 거의 대답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토론에는 단순 질문, 즉 역사적 사실의 오류를 지적했을 때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중요한 것입니다. 두번째 논리 전개상 문제 되는 질문인데 저는 충분히 늘봄님께 저의 입장을 말씀 드렸습니다. 혹시 제가 드린 질문과 문제제기에 늘봄님이 보시기에 터무니없는 것이 있었다면 알려 주십시오. 다시 정리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fishlover님이 하신 질문에는 질문이 아닌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분은 본인이 종교와 상관이 없고 신학과 종교학에는 전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감정적으로 반응하시기 보다는 그 질문을 추려서 적절히 답변해 주시면 되지 않은가요? 저의 은사 정진홍 선생님은 세미나때 제가 보기에 학생이 정말 바보같은 질문을 했을 때, 그 질문이 보석처럼 빛난 질문으로 다시 만들어서 자상하게 답변해 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학생 스스로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까 우려했는데 오히려 질문을 한 학생 스스로 그 질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한 학생 중에 저도 포함되었었는데 그 여운이 항상 제 맘에 남아 있었습니다.

신학이나 종교학 또는 다른 분야를 전문적으로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인신공격적인 질문이 아니라면 어리석은 하찮은 질문도 답변할 친절함과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번 전문가연한 적이 있는데 아래에서 한국의 유교와 관련된 것인데 와치독님께 한국 유학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면 좋겠다는 완곡한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와치독님께 모욕적인 표현이 될 수는 있지만, 어쨌든 만일 저한테 질문을 한다면 종교에 관한 어떤 질문도 답변을 할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캐나다의 어느 수업에 청강으로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말도 안되는 질문들을 했는데, 강사는 good question, excellent question을 남발하듯이 하더군요. 그것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저도 알바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때, 학생들에게 말도 안되는 질문도 very good question, excellent question을 남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론에 대한 평가에서도 어리석은 질문을 제 나름대로 다듬어서 코멘트를 해 주는데 지난 알바에서 학생들을 존중하는 평가에서 학생 전원으로부터 별 5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래라 저래라 발언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늘봄님께 학생에게 신문하듯 질문한 것이 아니라 학생으로서 선생님께 어리석은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앞으로 저를 포함해서 어릭석은 질문을 하면 보석같이 다듬어서 답변해 주시면 그 보다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내사랑아프리카  |  2015-11-2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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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lover님에 대한 저의 위의 진술이 잘 못 읽힐지 맘이 편치 않아서 덧붙입니다.

fishlover님이 "그래서 상식적이고 논리적 입장에서 늘봄님께 질문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했다가....또는 존재하지도 않은 하나님을 깨달아 이해했다고 했다가. 우리가 아는 상식적 국어의 범위를 넘어서는 표현을 했다가...때로는 기존의 모든 기독교신앙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했다가(사이비란 말은 안 했지만 함축된 의미는 자신만이 옳고 기존의 교회는 모두 틀린 것 처럼 표현하고..) 한마디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주장을 해 왔습니다. "라고 하신 질문은 좀 과한 표현이 있긴 하지만,

제 판단컨대, 이것은 늘봄님의 "신"학(theos+logos)의 핵심을 꿰뚫는 보석처럼 빛나는 정말 훌륭한 질문입니다. 깨달음의 하나님에서 신이 깨달음의 주체인가 아니면 대상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신의 대상성을 이야기하면, 인간이 대상으로서의 신에 참여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인가? 모든 종교적 활동은 뇌작용이라고 하는데 신은 뇌작용의 산물인가? 만일 신이 뇌작용의 산물이라면 왜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여전히 사용하는가? 신을 대상으로서 "믿지" (I don't believe in God) 않은 것이라면 이런 말을 왜 사용하는가? 신이 은유라고 하더라도 모든 은유는 지시대상(referent), 즉 그 은유가 지향하는 대상이 있는데 그 지시대상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인식론적 틀이 무너지면 나중에 진화론을 이야기하든 과학을 이야기 하든, 책이 700면이든 늘봄님의 신학의 기본 테제는 큰 의미를 상실합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좀 고민될 것이지만 나름 기뻐할 것입니다. 이런 좋은 질문을 늘봄님께서 놓치시질 안길 바랍니다. 진정한 학문적 소양과 인격은 바로 어리석은 질문을 빛난 대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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