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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를 미는 저녁
작성자 소나무     게시물번호 -4899 작성일 2006-09-19 11:15 조회수 740
칼국수를 미는 저녁 / 조선영 
 
내가 넓은 양푼이에 
밀가루 반죽을 치대면 
하루의 이야기를 잔잔히 늘어놓으며 
잘곰잘곰 찬물을 끼얹어줄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넓은 나무 도마에 
마른 밀가루를 솔솔 뿌려놓고 
그 믿음직한 팔뚝으로 
밀방망이를 쭉쭉 밀어 붙이면 
학교 운동장처럼 넓어지는 
칼국수 맛 쫀득해지는 저녁 
무논 서마지기가 이렇게 
미는대로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허허허 웃던 당신 

내가 애호박채를 썰 동안 
칼국수 국물이 부르르 
사랑처럼 뜨겁게 끓어 넘칠때 
남비 뚜껑을 열다 말고 
앗 뜨거 내귀부터 잡던 당신 

후루룩 후루룩 별거 아니래도 
별미처럼 맛나게 먹어주며 
당신의 영토를 칼국수처럼 
넓게 밀어 부치진 못하였지만 
긴 면발처럼 길게 한번 살아보자던 
칼국수를 미는 저녁이면 
떠난 당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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