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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의 “아버지의 내력”
작성자 내사랑 아프리카     게시물번호 -5088 작성일 2006-10-03 21:11 조회수 816
얼마 전 씨엔드림 웹싸이트에 “소나무”님이 퍼 오신 시를 보고 저의 감상문을 답니다. 그저 흘러가는 한편의 시지만, 잠시 발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시간을 다시 갖자는 의미에서 다시 퍼 올렸습니다.


아버지
-김형수-

머슴였던 울 아버지
바지게에 꼴짐지고 두렁길을 건널때
등에 와서 얹히던 햇살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울 아버지 혼자 남아 밤 늦도록 일하실때
둠벙 속에 살고 있는 색시 같은 달덩인
얼마나 얼마나 처량한 친구였을까
그마저 구름이 가렸던 밤엔 어떻게 지냈을까


김형수의 “아버지의 내력”
-내사랑 아프리카

1. 시가 읽히는 공간과 시간
시가 읽히는 것은 일종의 만남이다. 만남은 다양하다. 스쳐지나 가는 만남도 만남이고, 애증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만남도 만남이다. 시가 읽히는 공간과 시간은 어디나 가능하다. 마치 바닷물이 출렁이는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시적 언어를 만나는 것은 내 마음이 수용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김형수의 “아버지”는 그런 만남의 현상학을 잘 빚어낸다. 만남이란 단순한 조우가 아니다. 만남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문화적 유전자처럼 내 기억의 “몸”의 일부를 이룬다. 왜 그런고 하니, 만남은 원하는 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2. 아버지의 내력과 문화적 유전자
이 시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머슴였던 울 아버지”

이것은 시적 화자에게 명백한 사실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화자의 기억의 재건 (reconstruction)의 소산물이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첫 어귀를 아버지가 머슴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아버지+현재의 “나”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가 머슴이라는 지시소 (referent) 밖에 없을까?

아버지        나
?                 ?
?                 ?
?                 ?
?                 ?

머슴은 농부라는 계급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이다. 농부의 삶으로서 땅 떼기 하나 없는 모습으로 시적 화자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과거와 현재가 촘촘히 얽힌 기억의 숲에서 “아버지인 머슴=머슴의 아들인 나”를 연결시키는 은유적 “고백”은 혁명적인 것만큼 처참하다.

아버지와 나는 생물학적 유전자 (biological gene)에 의해 연결된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단어엔 생물학적 유전적 전승 (biological inheritance)이라는 연결고리를 초월한다. 거기에는 나를 키우고/기르신 분과의 연결이다. 이것을 “문화적 전승” (cultural inheritance)이라 하자. 이런 문화적 전승의 핵심에는 지울 수 없는 “문화적 유전자” (cultural gene)가 내장되어 있다. 문화적 유전자는 생물학적 결정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근원적 힘을 일컫는다. 현재 자기를 있게 한 아버지의 내력의 가장 핵심적 요소로서 “머슴”으로 시작하는 것은 시적 화자의 기억의 재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누구나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기고자 하는 머슴이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내력 속에서 시적 화자는 현재의 자기 모습을 찾는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의 모습 속에는 머슴이었던 아버지의 문화적 유전인자가 들어 있다. 머슴이었던 아버지라는 사실이 현재의 나를 규정지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회적 낙인 (stigma)은 마치 화자인 “내”가 생물학적으로  “머슴의 아들”이라고 규정지을 위험이 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나를 형성한 사회적 환경이 마치 변하지 않은 생물학적 유전인자로 간주하여 나를 열등한 존재로 사회가 취급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족쇄가 되면 나는 열등의식의 노예가 된다. 열등의식이란 자기가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전승이나 사실을 숨기려거나 부정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열등의식은 끊임없이 자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자기가 그 사실을 부인하고 노력할수록 그 사실은 나의 삶의 지워지지 않은 그림자로 나를 따라 다닌다. 이 시는 바로 열등의식을 조장하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 놓는 유전고리를 깨는 일도 동시에 수반한다.

3. 연상적 고백
“바지게에 꼴짐지고 두렁길을 건널 때
등에 와서 얹히던 햇살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울 아버지 혼자 남아 밤 늦도록 일하실 때
둠벙 속에 살고 있는 색시 같은 달덩인
얼마나 얼마나 처량한 친구였을까
그마저 구름이 가렸던 밤엔 어떻게 지냈을까”

시적 화자가 말하는 고백의 내용엔 아버지에 대한 입지전적인 것도 없다. 아버지가 머슴이었다가 큰 회사 사장이 되었다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말이 없다. 오히려 머슴이었기 때문에 오는 “노동의 고달픔”을 노래할 뿐이다.

“바지게,” “꼴짐,” “두렁길,” “늦은 밤” 등의 시어들은 아버지의 고달픈 노동을 적나라하게 연상시킨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들에 나가거나 논두렁에 가서 소 풀을 먹일 꼴을 베어 지게에 지고 온다. 무거운 꼴 짐에 좁은 논두렁 길은 아직 아침을 먹지 않은 시장기의 강도를 점층시킨다. 아침을 먹기 전 아버지의 몸은 이미 소진된다. 동트는 새벽 동쪽 들녘에 나갔다가, 이제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 온다. 햇살조차 무거워 견디기 힘이 든다. 비틀비틀 논두렁 길을 걷다.

낮 동안에 아버지가 고된 논과 밭일을 했을 것이란 연상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런 아버지가 밤늦게 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 온다. 휘영청 밝은 달빛은 노동을 감내하는 아버지의 외로움을 처량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버지가 총각 머슴일 것이라는 짐작을 한다. 고달픈 일과가 삶의 전부였을 아버지. 머슴 방 창살 사이로 비취는 달빛을 벗삼아, 연인 삼아 잠을 청할 때, 얄미운 구름이 가리우면 삶의 고달픈 무게만큼 외로움은 더한다.

고달픔, 외로움, 침묵. 이 모든 것은 벗어날 수 없는 노동의 반복이라는 삶의 고리에 메인 아버지의 삶이다.

4. “나”의 탄생
머슴이었던 아버지의 현상적 묘사 속에 나는 없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내가 잉태하기 아득한 옛날. 이미 아버지의 삶의 여정 속에 자신이 잉태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 아버지가 나를 낳은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내력에 대한 서술은 나의 내력을 위한 서론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마음이 시린 고백이다. 나에 대한 고백임과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애잔한 회상이다. 자랑할 수 없을 머슴이었던 아버지. 재산, 학벌, 권력이 사람의 자기 정체성을 규정한 사회에서 머슴인 아버지에 대한 고백에서 시적 화자의 건강한 모습이 연상된다. 재산도 없고, 학벌도 없고, 권력도 없이, 고달픈 노동을 통해서 나를 낳으신 아버지!

우리는 고백해도 될 것을 숨기고, 숨겨도 될 것을 뽐내려 한다. 그것은 나를 만든 아버지를 숨기는 위선이다. 아버지는 나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숨겨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위선적 몸부림일 뿐이다.

위선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커밍 아웃. 이것이 시인의 몫일 것이다. 시인이 도덕적 권면자일 수는 없다. 자기와 자기의 사회를 희화화하거나 욕해 주거나, 비웃어 주거나, 일탈하지 못하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매끄러운 시어로 자기를 포장한들, 시가 생명력을 갖고 꿈틀거릴 수 없다. 삶의 진솔함, 거기에 시인의 자질이 나오며, 시적 혁명이 시작된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진솔한 자는 모두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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