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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8247 작성일 2024-08-06 08:19 조회수 1278

괴로움 혹은 고통을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게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괴로움과 고통을 겪었다. 가장 심하게 겪은 고통은 급성 담낭염에 걸렸을 때였다. 쓸개의 돌이 담도를 막아 염증이 생겼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FootHill 병원 응급실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이 수치스러운 모습은 모두 아내가 직접 목격했다. 나는 정말 통증을 못 견디는가 싶었다. 바둑을 두면서 팔뚝 살을 갈라 뼈에서 독을 긁어낸 관우의 인내심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나는 정말 고통을 못 견디는가? 사실 그건 또 아닌 듯 싶다. 응급 담낭 제거 수술을 받고 몇 년 후에 또 대상포진에 걸려 몇 주 집에서 쉬었다. 오른쪽 가슴과 등쪽에 발진이 생겼는데 무척 아팠다. 흔히 대상포진의 통증은 산통과 비교된다. 의사가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하며 진통제를 먹으라고 권하였지만 그냥 고통을 참고 넘겼다.

 

최근 한국 여행을 마치고 캘거리에 돌아와서 잔디를 깎고 집 외벽 수리를 하며 육체노동을 했다. 그리고 3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고 보우 강변을 달렸다. 시차에 적응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를 했는지 약간 몸살에 걸렸다. 그리고 우측 위 어금니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회사에 복직한 후 의료보험을 살리고 치과에 갈 생각이었다. 아내가 산을 가고 싶어 해서 회사에 복귀하기 전에 카나나스키스 등산을 했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지면서 점점 어금니가 욱신거리며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산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홀로 치통을 참아 넘겼다.

 

산행을 마치고 카나나스키스 입구에 있는 카지노 부근의 팀호튼에서 팀빗과 아이스캡을 샀다. 집으로 가는 길에 먹고 마시기 위해서였다. 운전대를 잡으며 아이스캡을 한 모금 쭉 빨아 올렸는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차가운 음료가 어금니에 닿으면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역시 아내에게 내색하지 않고 집으로 달렸다. 집에 도착한 후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아이스캡을 보고 아내가 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냥 적당히 둘러댔다.

 

고민에 빠졌다. 그냥 회사로 갈 것인가, 치과에 들려 어금니를 치료한 후 복직할 것인가. 밥을 먹다가, 그리고 치통 때문에 잠을 못 이루면서, 치료를 더 이상 미루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치통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는데 결국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다. 이부프로펜 600mg 혹은 아세트아미노펜 500mg을 먹었다. 흔히 약국에서 애드빌 혹은 타이레놀로 파는 그것이다. 이런 약들을 먹으면 못 견디게 심한 치통이 어느 정도 견딜만한 고통으로 가라앉는다.

 

참으로 신기하다.

 

치과에서는 내 어금니가 세로로 금이 갔고, 그 틈을 타고 들어 뿌리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신경 치료 후 크라운을 하거나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하는 두 개의 옵션을 줬다. 만약에 금 간 것이 뿌리까지 이어졌다면 발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임플란트를 권했다. 나는 먼저 신경 치료 후 크라운을 하는 방향으로 희망했다. 이에 덴티스트는 일단 아목시실린 500mg 짜리를 일주일치 처방해 줬다. 하루 세 번 항생제를 먹게 됐다. 이런 항생 물질이 내 몸의 소장해서 흡수되어 혈관을 타고 흐르다가 극히 일부분이 나의 어금니 쪽 염증 부분까지 도달하여 염증을 유발하는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파괴할 것이다.

 

정말로 신기하다.

 

아, 담낭 제거 수술을 마친 후 패밀리 닥터는 여러 가지 검사를 했었다. 의사는 담석증의 원인으로 고지혈증을 특정했다. 그리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로수바스타틴 20mg을 처방해 줬다. 나는 매일 잠들기 전에 이 조그마한 알약을 삼킨다. 그러면 이 약은 내 간에서 LDL 콜레스테롤 합성을 방해한다. 결론적으로 혈액에 녹아있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강하 한다.

 

생각할수록 신기방기하기 짝이 없다.

 

내가 여기서 참으로, 정말로, 생각할수록 신기하게 여기는 것들은 바로 그 하찮은 단위 때문이다. 0.5 그램, 0.02 그램의 눈곱만큼도 못 한 것들이 내 몸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소금이나 설탕을 치는데 보통 수십 그램 단위다. 소금이나 설탕을 0.5g이나 0.02g을 사용한다면 전체 요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런데 극소량의 이런 약물들은 냄비안의 내용물보다 수십 배의 용적을 가지고 있는 내 몸속에서 생사를 가를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경이로울 뿐이다.

 

비단 약물 뿐만이 아니다.

 

최근 저혈당 쇼크를 경험했다. 살을 뺀다고 24시간 이상 단식을 했는데 갑자기 오한이 들고 현기증이 나며 식은땀을 흘리면서 기절하기 직전까지 갔다. 저혈당의 기준은 혈액 속의 포도당이 50mg/dl 이하일 경우를 말한다. 정상 혈당은 공복인 상태에서 60mg/dl 이상이다. 즉 혈액 1리터당 단 0.1g의 포도당 차이가 정상과 저혈당을 가른다. 당뇨병 환자가 저혈당 쇼크를 일으키면 곧장 실신에 빠져 목숨을 잃는 일까지 일어난다.

 

나는 저혈당 쇼크 속에서 겨우겨우 브라운 슈가가 든 오트밀 스프를 먹었는데 단 두 숟갈을 먹고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치 배터리를 0% 까지 모두 소모하여 전원이 꺼지기 직전이었는데, 단 두 스푼의 오트밀 죽으로 순식간에 70% 가까이 충전된 느낌이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아이쿠,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내가 하도 예전에 담석증에 의한 고통으로 엄살을 부려서 아내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그 후의 경험으로 내가 단지 엄살꾼만은 아니다라는 걸 나타내고 싶었다. 그런데 예전에 쓰다가 중단한 삼체 시리즈 중 Sophon 에 대한 설명 도입부처럼 글의 내용이 변해가고 있다.

 

다시 통증으로 돌아가서!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치과 신경치료라는 것을 받았다. 첫 치과에서 2시간 동안 신경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나의 네 번째 신경을 못 찾았다. 의사는 무척 미안해하며 신경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다른 병원으로 나를 리퍼했다. 그래서 Endodontist 라는 스페셜리스트에게 또 다시 신경 치료를 받았다. 나는 이 과정을 두려움 없이 의연하게 받아 넘겼다.

 

비록 담석증에 의한 통증으로 병원 응급실에서 데굴데굴 굴렀었지만 최근의 치통과 대상포진 등의 경험으로 볼 때 내가 유독 통증에 과민 반응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살아갈 날은 아직 많이 남았고 죽기 전에 경험할 고통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담석증으로 응급실에 갔을 때 수술을 기다리며 나는 코데인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었다. 두 알의 코데인을 삼키자마자 극심한 고통이 사라진 경험이 있다. 닥터하우스라는 미국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은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바이코딘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사탕 먹듯 먹는다.

 

본격적인 통증 관리를 위해서 몰핀이라든가 펜타닐 등이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죽기 전에 고통스럽겠지만 현대 의학이 제공하는 경감 수단이 많이 있다.

 

괴로움 혹은 고통을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게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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