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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시마코스의 변명 (상) _ 조현정의 시대공감(3)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등장하는 트라시마코스는 기원전 5세기의 소피스트로 소크라테스 보다는 10여년 뒤에 태어났고, 플라톤 보다는 20여년 일찍 태어났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할 때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책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의 정의관을 논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저자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상대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정의관을 비판하고 보편적이고 목적론적인 정의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플라톤과 트라시마코스는 2,400여년이 지나 2017년에 저승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트라시마코스: 이 보게 플라톤, 난 오랫동안 자네를 기다려왔네. 자네가 국가란 책에서 나를 아주 나쁜 놈으로 만들어 놨더군.
플라톤: 난 솔직히 있는 그대로를 쓴 것뿐 입니다.
트라시마코스: 자네가 그 자리에 직접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자네는 내가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묘사해놨더군.
플라톤: 선생님의 생각이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요?
트라시마코스: 난 강자의 이익이 정의라 말하지 않았네. 현실을 볼 때 언제나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지.
플라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동의 할 수 없군요. 만약 선생님의 말대로 현실세계에서는 언제나 권력이 있는 자들의 이익이 정의가 되었다고 한다면 나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닌 소크라테스를 죽인 권력자들이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어야겠지요. 그 뿐만 아니라 히틀러나 지금 북한에 있는 김정은을 비롯한 수많은 독재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막강한 권력으로 사익을 추구하면서 독재를 정당화 하지만 주위에서 누가 그들을 정의롭다 합니까. 반면 넬슨 만델라는 오랜 시간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꼭 권력만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도 강자의 이익이 곧 정의가 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사람의 내면에는 보편적인 정의관이 있기 때문이죠.
트라시마코스: 이봐 플라톤. 자네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있네. 자네가 책에서도 말한 것처럼, 정의가 다시 불의가 되는 것은 권력이 있다가 권력이 없어졌기 때문이지. 아니면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거나. 자네가 예를 든 히틀러도 절대적인 권력을 누릴 때는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 받았네. 물론 히틀러의 지배력이 독일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 내에서만 영웅이었던 거지. 그리고 조금 더 넓게 생각해 보게. 사람들은 히틀러를 악마의 괴수로, 그를 쳐부순 연합국은 정의의 편인 것처럼 알고 있어. 그러나 자네도 저승에서 내려다 보아서 알겠지만 연합국은 그냥 승전국일 뿐이야. 한마디로 히틀러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권력자 일 뿐 그들이 보편적인 정의를 실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연합국들이 과거에 무엇을 했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화 하지 않았나. 그들 또한 약탈자고 침략자들이지. 단지 권력투쟁에서 히틀러에게 이겼기 때문에 정의의 편이 된 거야.
플라톤: 저도 할 말이 많습니다만 일단 한 가지 더 물어 보겠습니다.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나의 스승 소크라테스나 예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들에게는 권력이라고 할 게 없었어요. 그러나 후대에는 그들을 죽인 권력을 불의로, 힘 없이 죽은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정의로 보고 있잖아요.
트라시마코스: 자네는 어리석게도 나에게 유리한 예를 들었군. 물론 당대에 소크라테스나 예수는 권력자가 아니었어. 그래서 ‘청년들을 미혹하는 선동가’, ‘반란을 꿈꾸는 괴수’로 지목되었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게. 자네의 철학과 예수의 사상은 313년 이후로 막강한 권력자로 등장했네. 권력과 함께 예수는 신으로, 소크라테스는 성인으로 받들어지면서 정의의 기준이 된 것이지. 그러다 보니 소크라테스 선생과 논쟁한 나는 궤변론자에 권력을 쫓는 나쁜 놈이 되지 않았나?
플라톤: 선생님은 여전히 궤변론자시군요. 언뜻 들으면 선생님의 말이 그럴 듯도 합니다마는 선생님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 궤변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는 권력과 상관 없이 올바른 말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요. 만약 사람들의 마음에 권력에 대한 의지만 있고 보편적인 정의감이 없었다면 힘 없는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 말대로 권력을 추구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벌써 예수와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이 아닌 정의를 쫓아 따라 가다 보니 큰 무리가 되고 힘이 생긴 것이지요.
트라시마코스: 잘 생각해 보게. 힘이 없을 때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로마에서 볼 때 그냥 유대교의 한 분파 아니면 동방의 이교도일 뿐이었어.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더라도 힘이 없을 때는 로마의 방화범으로 몰리거나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반역자로 간주될 뿐이었지. 소크라테스도 자네가 없었다면 젊은이들을 모아 헛소리를 떠들다 죽은 노인으로 기억되겠지. 아니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조차 몰랐을 거야. 자네의 철학이 권력자들에 철학이 되고, 기독교가 권력자들의 종교가 되면서 상황이 역전 된 것이지. 곧 힘을 가지니까 불의가 정의가 된 거야. 반면 그와 맞서던 세력은 정의에서 불의가 돼버렸지. 우리 소피스트들은 자네 덕분에 지금까지 궤변론자 취급을 받고 있네. 물론 니체와 같은 친구들이 나와서 우리를 대변해주기도 했지만.
<다음호에 계속>

발행일: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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