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에게 만일 자기의식(自己意識)이 있었다면,
자신 외에 의식을 가진 피조물(被造物)은 결코
창조해 내지 않았으리라' - 칼 구스타프 융
몸서리 쳐지는 세상의 낡은 권위 앞에서
소박한 분노를 잉태한 가슴이,
가늘게 경련합니다
환상으로 위장한 땅과 하늘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던 피조물들을
몽땅 신(神)에게 돌려 보내고
어디에서 용기가 솟아났는지 발가숭이가 되어,
굴복(屈腹)의 울타리를 넘어 온
먼 우주의 순수한 빛에 몸을 적십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청결한 욕망으로 까만 영혼을 세탁하는,
그리하여, 죽음마저도 향기로운
이 세례적(洗禮的)인 행위를
신(神)은 애써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의 비천한 삶을 누군가 대신하지 않았음에,
그나마 편한 마음이 됩니다
문득,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망설이던 거부(拒否)로 비로소 자유로운,
새로운 날들 앞에서
그러니, 신(神)이여 용서하소서
이 맹랑한 마침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