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지나온 걸음자리

아슴히 옛시절을 떠올리네.

골목길 휘감는

군고구마 냄새는

아저씨 겨드랑이 냄새보다

진하게 퍼져 오고.

얕은 책상위를 뛰어넘던

우리의 수선스런 장난은

짧은 다리를 키워 주었지.

여름날

쩍갈라진 수뱍속에

숫가락 여기 저기 박히던날

어머니의 사랑은

붉은 핏물처럼 녹아 흐르고

아버지의 귀가길은

알전구 박힌 골목길을

서둘러 돌곤 했지.

늦은밤 어머니의

틀질 소리, 다듬이질 소리는

우리들의 헤진 옷에

사랑으로 구멍을 메워주고

등물로 씻어내린 냄새

후두득 털어낸 후

한 입 베어문

개구리 참외맛은

젖물보다 달착했네.

이리 저리 굴러 있는 도광속에

꼭꼭 숨어있는 술레는

한나절 나올 줄 모르고 숨어 있었지.

밤이면

무명실 타래 속에 풀려나오는

할머니의 이야기 샘이

시루속 노란머리  박고 올라오는

콩나물을 키우는데.

다음날

해걸음 마당 오를때

쩔그렁 엿장수 아저씨 왔다.

얘들아 엿치기 하자.

신나는 엿치기에

서울간 공순언닌

고향집 마당이 그립다.

오늘

대장간집 곰배팔 아저씨는

돌아오는 장날 내어놓을

도끼자루, 기억자 낫

풍무질 서둘러 당기는데

우리들 몇몇은

월사금 몇푼을 보태려는

옆구리 낀 석간이 무겁지 않았다.

늦가을

일찍 매달은 메주덩이 냄새는

새로 이엉 얹은 지붕 위로 날리고

논두렁 얼음 쩡쩡한 날

큰형아 만들어준 앉은뱅이 썰매는

팽이처럼 씽씽 돌아

짚불 놓아 젖은옷 말리도록

하루해를 돌았지.

다시 아침이면

하나뿐인 공동수도 꼭지밑에

새치기로 비집고 드는

윗집 아줌마의

양철 물통이 자꾸만 미워지네.

어제 선생님 내어준 숙제는

왜 안했을까

벌로 서는 의자가 야속해

하교길 막내 동생 올라탄

목마가 부럽구나.

책가방 던져놓고

어이 철이아 .

해걸음에 나무 한짐 긁어 오자

불러내고

어린 누이는

오후 새참길이 바쁘구나.

늦저녁

돌아오신 아버지 마른 목에

마을 어귀 주막집

목포댁이 꾹꾹 눌러준

한주전자 막걸리는 약이었지.

내일쯤

시집간 큰누나

어린딸 앞세우고

좌판 다라이에

두어손 남은 고등어 자반 사들고

친정 나들이 오려나 보다.

아 -

우리들의 지난 날은

골목을 도는 흙바람과

스치는 살 냄새가

알전구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그리 훈훈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