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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작성자 박병철     게시물번호 -1170 작성일 2005-03-14 17:25 조회수 1870
처음처럼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선후배,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는 여학생,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드나드는 친구,
무술경관이 휘두르는 쇠파이프,
독재에 분노하며 부르짖는 막걸리집의 노래 소리......
 

  1980년을 전후하여 대학생활을 보냈던 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졸업하던 그 날까지 자유를 억압하며 무력으로 통치하던 군사독재에 맞서 빈손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투쟁하는 학생들의 몸부림 속에서 대학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야학에서 만난 가장 성실하게 아이들을 돌보아주던, 가난했지만 항상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던 법대생 친구는 홀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뒤로한 채 유인물을 뿌리며 감옥행을 선택했고,
남겨진 나는 그의 영치금과 읽을 책을 준비하여 영화속에서만 보던 교도소란 곳을 처음 가 보았습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살까?
그 시대 남겨진 자의 선택은 시대적 양심을 져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 이외에 자신만을 위한 삶을 찾기에는 슬픈 기억만 남겨져 있었다.
 
 
ROTC를 가라고 권유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교내에서도 50M 전방에서도 1년차는 2년차에게
충성을 외치며 군생활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싫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결국에는 승락을 받아내어
육군 현역병으로 논산훈련소로 갔지요.
당시만 해도 소위 끝발내지는 청탁이 통했던 시절이라
훈련소를 나오니 국방부 777부대로 발령을 받고
제대하는 그 날까지 훈련한번 받지않고
머리기르고 흔히 일반인들이 보안사령부가 최고인줄 알았으나
보안사보다는 몇십배는 더 좋은 군생활을 하고 제대하였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985년 여름
청량공업고등학교에서 국가안전기획부(예전의 중앙정보부)
어학분야(전공이 독일어라서)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하고 6개월의 훈련을 받던 중
가친의 권유로
국가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와 안기부의 권력다툼이 심했던 때라 신분이 들쑥날쑥이던 안전기획부를 그만 두고
학교에 이력서를 낸 것이 어제 같은 데.....
안전기획부 시험은 볼 만 했었습니다.
시험장 부근에 안기부 직원들이 쫙 깔려서
경호를 해 주더군요.

  1986년 신입 교사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 은평구 소재 선정고를 오르던 그 날은  날씨가 맑았다.
첫 수업. 여학생 얼굴을 쳐다보기 부끄러워 허공만 바라보고
떨리는 손 발을 교탁에 의지하며 수업을 진행했던 총각 선생은 이제 46살이 되어버렸습니다.
잔소리도 제법 할 줄 알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도 칠 줄 아는 40대 중반의 중년의 교사가 되었을 때 2003년 8월 나는 캘거리로 생활의 터전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난 주일이 싫었지요.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학교로 가서 빈 교실에 가서 물왁스 청소도 백번은 했으리라.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아이들을 떠올리며 휴일을 보냈고,
아이들이 교실로 등교할 때 기분 좋게 등교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들려 줄 잔잔한 노래를 교실에 틀어 놓기도 했었다.
난 공부를 못한다고 야단치지 않았고 공부보다 주위의 친구들과 공동체 삶을 소중히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독려했었습니다.
반 아이들과 연극도 보러 다니고,
모듬 일기도 함께 쓰면서 마음속에 서로를 간직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던 뮤지컬 ‘이 작은 나의 빛’과 ‘솔티와 함께’는 아이들과 나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고,
고3 아이들과 함께 했던 유명산 통나무집 학급 캠프와 정동진 캠프는 힘들었던 고3 생활에 안식을 얻으며, 밤하늘 가득 찬 별을 보며 밤 세워 서로의 미래를 얘기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남학생 학급 담임을 할 때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학생들과 목욕탕에서
집단 상담을 하기도 했었지요.
각자 때미는 수건을 준비하고
주머니를 털어 목욕비를 내주고
손등과 팔의 때를 개인적으로 밀어주며
가정과 학교생활, 이성친구 등 담임인 나와 아이들은
홀딱 벗고 가릴 것 없이 솔직하게 상담에 참여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교직에 있었다면 올해는 20년이 되는 해 였을텐데.
  
지나버린 18년을 돌아보면 의욕만 앞섰던 나를 이해하고 따라주었던 아이들에게 참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서툴고 마음에 들지 않은 일들도 많았을 텐데 늘 나의 어깨가 처질 때면 “사랑해요 선생님”이란 말로 용기와 위안을 주었던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너희들이 나의 삶의 의미였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마지막으로 18년의 교직생활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후배 선생님들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보내고 싶습니다.
 
교육은 감동이라고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
아이들의 이야기가 빽빽하게 적힌 교무 수첩을 고이 간직하시던 백발의 선생님,
퇴직을 앞두고 젊은이보다 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시던 선생님,
교육 행정을 맡으면서도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소홀함이 있을까 노심초사 걱정하시는 선생님,
조금이라도 더 좋은 수업을 하려고 고민하시는 선생님.
이 모든 선생님들이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지표였습니다. 
  
캘거리에서 아직도 20년정도는 더 살아야 할 텐데
교직에 처음 섰을 때 처럼
이곳 캘거리에서도 항상 나를 낮추고
타인에게 실망을 주지 않고
덕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금도 졸업생들이 꾸준하게 보내주는 메일을 읽고
평소 좋아하던
한국식 길다방 커피(일명 자판기 인스턴트 커피)를
라면 박스에 소중히 담아 보내주는 제자들을
대하노라면
가슴 사무쳐 올 때가 있네요.
 
이 글은 며칠 전 졸업생이 삼수 끝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고
학교생활을 일 주일정도 지냈노라면서
메일을 보내주어
문득 신변잡기라도 써 보고 싶은 충동에 써 보았습니다.
 
캘거리 교민들이 서로 시기하지 않으며,
서로를 독려하고,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 사랑하며,
분열되지 않는 한인사회가 되기를 절실하게 갈망하는
뜨거운 마음을 지닌자가 써 보았습니다.
 
부활절이 다가오네요
무언가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지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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