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라는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탁자가 서너 개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허름한 식당이었습니다. 장사가 너무나 잘되어 주인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옆집까지 헐어 식당을 크게 개축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이전보다 더 줄었습니다.
끝내 식당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식당이 망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손님의 눈으로 이 식당을 바라 보렵니다.
이 식당에 온 손님들의 대부분은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작고 초라한 식당이 더 편합니다.
옆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식당이 개축되면서 “나”의 남루한 모습과 촌스런 자태가 부담스럽습니다. 어쩐지 식당에 들어가면 나 자신이 먼지를 한아름 안고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검다거나 절대적으로 희다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순수하다는 것도 상대적 인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자신이 갖는 생각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흑백 논리”라고 부릅니다. 절대에는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절대에 살 때, 우리는 고여있는 물처럼 됩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항상 물을 가둬두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예수님을 저의 선생님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 분을 우리는 사랑의 심부름꾼이라 말합니다.
그 분의 사랑은 바로 타인의 가능성에 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내 자아의 열정이 아니고,
내 마음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타인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은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타인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두는 것입니다.
대변자가 되지도 않고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말하게…
한 주간 한국 도서관 문제로 떠들석했습니다.
책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상투어처럼 들어온 말,
“마음의 양식”입니다.
책을 통해서 마음의 양식을 갖는다는 얘기지요.
마음의 양식을 갖는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마음을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글자 하나,
문장 하나의 물줄기를 따라갈 때,
우리의 고여있는 마음도 함께 흘러 갑니다.
마침내는 이 물줄기가 만나 대양을 이룹니다.
과거의 기억과 회상들,
삶의 지혜와 양식들,
만남의 즐거움과 환희가 만나 이룬
책의 대양을 향해 우리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책은 마음의 흐름입니다.
책을 통해서 내 마음이 흐르고,
내 마음에 묻어둔 “너”에 대한 내 마음의 인식도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는 것은
“나”라는 자아와 내 마음에 비친 “너”라는 타인입니다.
“너”를 내 마음속에 가둘수록
내 마음의 타인은 자라고 자라 괴물처럼 커지고,
내 마음에 고이고 고여 썩어서 검게 변하고 맙니다.
그런 “너”를 우리는 “편견”이라 일컫습니다.
편견은 다름아닌 내 마음에 고여 있는 타인입니다.
이제는 흘러 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타인을 일컬어 “미움과 증오와 의심”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속에 편견으로 자라는 타인.
우리의 적은 내 마음의 타인이고,
그 타인은 우리가 쌓아 놓은 편견의 탑이 됩니다.
그 타인을 책을 통해 흘러 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 회상으로 부활하는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캘거리에 흐르는 한인들의 강줄기를 만들기 위해서
책읽는 공간을 만들어갑시다.
그 때 우리 삶의 시간도 함께 흘러갈 것입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조금 더 지혜를 짜면
예기치 않은 우리 마음의 보석상자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열정을 태우는 것은 내 승리의 제단을 쌓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사랑과 자비와 이해의 베를 짜면
헤아릴 수 없는 올이 모여
책 사랑의 마음이 앉아 쉬는
주단이 됩니다.
인생의 길손 여러분
나그네로 만나는 길벗이여
우리는
한민족 한형제
그런 동아리에 잠시 머물다 가고 싶습니다.
- 설익은 감
탁자가 서너 개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허름한 식당이었습니다. 장사가 너무나 잘되어 주인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옆집까지 헐어 식당을 크게 개축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이전보다 더 줄었습니다.
끝내 식당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식당이 망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손님의 눈으로 이 식당을 바라 보렵니다.
이 식당에 온 손님들의 대부분은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작고 초라한 식당이 더 편합니다.
옆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식당이 개축되면서 “나”의 남루한 모습과 촌스런 자태가 부담스럽습니다. 어쩐지 식당에 들어가면 나 자신이 먼지를 한아름 안고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검다거나 절대적으로 희다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순수하다는 것도 상대적 인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자신이 갖는 생각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흑백 논리”라고 부릅니다. 절대에는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절대에 살 때, 우리는 고여있는 물처럼 됩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항상 물을 가둬두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예수님을 저의 선생님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 분을 우리는 사랑의 심부름꾼이라 말합니다.
그 분의 사랑은 바로 타인의 가능성에 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내 자아의 열정이 아니고,
내 마음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타인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은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타인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두는 것입니다.
대변자가 되지도 않고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말하게…
한 주간 한국 도서관 문제로 떠들석했습니다.
책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상투어처럼 들어온 말,
“마음의 양식”입니다.
책을 통해서 마음의 양식을 갖는다는 얘기지요.
마음의 양식을 갖는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마음을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글자 하나,
문장 하나의 물줄기를 따라갈 때,
우리의 고여있는 마음도 함께 흘러 갑니다.
마침내는 이 물줄기가 만나 대양을 이룹니다.
과거의 기억과 회상들,
삶의 지혜와 양식들,
만남의 즐거움과 환희가 만나 이룬
책의 대양을 향해 우리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책은 마음의 흐름입니다.
책을 통해서 내 마음이 흐르고,
내 마음에 묻어둔 “너”에 대한 내 마음의 인식도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는 것은
“나”라는 자아와 내 마음에 비친 “너”라는 타인입니다.
“너”를 내 마음속에 가둘수록
내 마음의 타인은 자라고 자라 괴물처럼 커지고,
내 마음에 고이고 고여 썩어서 검게 변하고 맙니다.
그런 “너”를 우리는 “편견”이라 일컫습니다.
편견은 다름아닌 내 마음에 고여 있는 타인입니다.
이제는 흘러 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타인을 일컬어 “미움과 증오와 의심”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속에 편견으로 자라는 타인.
우리의 적은 내 마음의 타인이고,
그 타인은 우리가 쌓아 놓은 편견의 탑이 됩니다.
그 타인을 책을 통해 흘러 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 회상으로 부활하는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캘거리에 흐르는 한인들의 강줄기를 만들기 위해서
책읽는 공간을 만들어갑시다.
그 때 우리 삶의 시간도 함께 흘러갈 것입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조금 더 지혜를 짜면
예기치 않은 우리 마음의 보석상자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열정을 태우는 것은 내 승리의 제단을 쌓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사랑과 자비와 이해의 베를 짜면
헤아릴 수 없는 올이 모여
책 사랑의 마음이 앉아 쉬는
주단이 됩니다.
인생의 길손 여러분
나그네로 만나는 길벗이여
우리는
한민족 한형제
그런 동아리에 잠시 머물다 가고 싶습니다.
- 설익은 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