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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1679 작성일 2005-08-19 01:20 조회수 1219
 
부고(訃告)


사람들이 더 이상 땅 위에 살지 않는 곳에서는,
애틋한 사랑이나 포근한 그리움 따위에 젖어
산다는 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온통, 가시 돋은 욕망의 날카로운 아우성에
오래 묵은 하늘은 사람들의 끝없는 소란과 싸움으로
더욱 무거워만 간다

오늘도 내 생각의 배는,
바다의 성난 파도에 난파선처럼 흔들거리다가
주검의 모습으로 어둡게 물든 하늘 아래 닻을 내리고,
희미하게 지워지는 삶의 한 모퉁이에서
이룰 수 없던 사랑의 유서(遺書) 같은 외마디 소리를
항해일지로 기록한다

그렇게, 또 내 안에서 사망한 시의 부고(訃告)를 작성한다

낡은 하늘 위로 솟아 오르는 밝은 기둥을 꿈꾸던 것은 분명,
아름다운 열정이었지만 그것은 이윽고 불운(不運)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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