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가는 부분이 몇 군데 있군요.
첫번째는 성냥갑 같은 집들, 같은 돈이면 벽돌로 지붕도 좀 예쁘게 지을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 이런것들이 40만이라 흠. 26% 급등 좀 거시기 하네.
두번째는 다운타운, 깨끗하기는 한데 뭔가 부족한 느낌. 도심에 17번가 같은 분위기가 약각 섞여 있었으면
바로 이런게 2% 부족하단 느낌에서 비롯된 듯. 살아도 좋을것 같고 오일달러도 다 이해 가는데 확 당기는 흡인력은 사실
없음.
근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실 그런 흡인력을 가진 도시가 퀘벡을 제외하고 캐나다에 없는듯함.
밴쿠버에 학을 띠고 내년쯤 토론토나 캘거리로 옮겨갈려고 이것 저것 알아는 보는데 참 결정 내리기가 힘들구만요. 캘거리 집값 싼맛도 이젠 예전 얘기가 된 듯 하니.
☞ 어제신문 님께서 남기신 글
***Alberta bound; the great escape
(글로브 앤 메일 지에서 토론토와 캘거리 거주 기자들을 상대 도시로 바꿔 보내 일주일간의 초기생활 경험을 통해
얻은 각각의 체험기를 게재한 기획 기사입니다. 그중 토론토 거주 피터 체니 부부가 겪은 캘거리 에서의 단상을 정리합니다. 새로운 이주자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캘거리의 모습, 외지인이 보는 우리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길 희망 합니다.--이 스와핑이 그 스와핑 인줄 알고 낚인 분들께는
심심한 쏘리~ /어제신문 주)
우리 부부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처음 토론토에 도착 했을 때, 우리는 이 도시를 사랑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토론토가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황금의 도시'로 여겼었지만
그것은 오래지않아 우리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최악의 교통상황, 범죄율, 그리고 터무니 없이 비싼
주택가격은 토론토가 총체적으로 비난 받아오게끔 만들었다.
22년 동안이나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그러한 것들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왔지만도 난 늘 이곳을 스스로 탈출하는 꿈을 키워오고 있다.집을
팔고, 몰기지를 갚고 그리고 늘 푸른 하늘과 스키 천국인 곳, 10분만 나가면 바로 자연과 만날수 있는 곳으로의 이주를 꿈꿔왔던 것이다.
바로 캘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그 때 인것이다. 분명히 캘거리는 기념비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 경제는 불타오르고, 구인광고는 어디에나 나 붙어 있다.연방
수상의 출마지 캘거리를 캐나다의 새로운 수도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인구는 백만시대를 열어가고 있고, 매월 2천 여명의 새로운
이주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노바스코셔에서 자라난 내 아내는 사실 캘거리에 대해 철저하게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토론토를 벗어나 캘거리로 가자고 제안할
때마다 아내는 짜증을 내곤 했었다. 아내는 캘거리를 방문한 적이 전혀 없다.
캘거리에 도착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내가 '카우타운'에 대해걱정하던 것들이 사실로 다가왔다. 짐을 찾으면서 카우보이
모자를 보게 되었다. 또한 영화 하이눈에서나 본 듯한 카우보이 부츠도 볼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카우보이 의상을 보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하며 안심
시켰다. "이건 방문자들을 위한 걸꺼야, 진짜 캘거리 사람들은 이런걸 입고,쓰고, 신고 다니지는 않아"
Deerfoot Trail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서 우리가 렌트한 소형 자동차는 픽엎 트럭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다. 개조된
대형 바퀴를 장착하고 진흙을 잔뜩 묻힌 작업차량들이 보였다.
6년전 나의 마지막 방문 이래, 캘거리는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굽이 치는 언덕마다 집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고
다운타운은 새로 지어진 고층빌딩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벌써부터 토론토와의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문화적 충격 또한 경험하고 있다. 아내는 주택단지를 지나며 모든
집들의 인상이 한결 같이 박스상자 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캘거리의 서쪽 지평선에는 록키 마운틴이 자리잡고 있어 마치 스위스와 같은 전망을 안겨준다. 10분을 드라이브 한 끝에 우리는 도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수십년을 토론토의 교통체증과 싸워온 우리에게 순식간에 나타난 시골풍의 정광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등 뒤에 펼쳐진 초지를 지나 멀리 서 있는 캘거리와 멀어져가며, 우리는 해안가를 떠나 점점 대양으로 향하는 항해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채 한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관을 만끽하며 Norquay산에 도착 했다. 스키 천국에 서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신선했고, 벼랑위에서는 큰뿔 산양 무리를 볼 수 있었으며, 스키 슬로프에는 드문 드문 점 같이 박혀있는 스키어들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캘거리로 돌아오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 졌다.
사방에서 건설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고 건설 중인 콘도 들은 일분에 1마일 씩이나 솟아 오르는 듯 활기차 보였다. 셀폰 소리가
진동했고 사람들은 분주 했다. 새로 태어나는 캘거리는 흡사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보디빌딩을 막 끝내고 근육을 뽐내는 것 처럼이나
위용있게 팽창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타지로 부터 온 것처럼 느껴졌다. 웨이트리스는 물론 택시 운전기사 들도 모두 외지로 부터 온 사람들이었다.토론토에서
실직하고 캘거리로 온 지 일주일 만에 새 직업을 구한 오일 캄패니 직원은 채 1년도 안돼 완전한 캘거리안으로 변신해 있었다.
또한 해외로부터 유입된 많은 신규 이민자들도 만날수 있었다. 한 이민자는 그가 도착한 1980년대만 하더라도 캘거리엔 백인 들만 있는
듯이 보였으며 그들은 새 이민자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기도 했었지만, 거기에 차별은 없었고 일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었다고 상기한다. 우리들의 출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캘거리에는 더 많은 기회가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개방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70만 불 들여 지은 집이 바로 두배로 뛰었다고 말하는 한 이주자는 캘거리로의 정착을 결정한 이유로 캐나다 지도를 들여다 봤다고
말한다. 바로 그 이유다.그는 미래에 뭔가 일어 날 수 있는 도시가 캘거리라고 판단했다며 지정학적 위치를 역설하기도 한다.
그렇다. 캘거리의 경제는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그렇다면 거기에 문화도 함께 자라나고 있을까? 캘거리 역시 다양한 다국적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이다.
캘거리의 대중 교통망을 처음 접했을때, 토론토의 화려한 써브웨이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에겐 메르쎄데스 차를 현대 차로 바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캘거리의 교통시스템은 지상 전철과 버스로 이루어져 있으나, 내가 보기엔 주 교통수단은 자가용인 것으로
비쳐졌다. 따라서 주택을 물색하러 다닐때 우리는 자동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살 집을 찾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수 시간을 헤메고 다녔지만 마땅한 가격의 주택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캘거리에는 딱 두가지 유형의 주택이 존재하는 것 처럼 보였다. 하나는 방갈로 형태의 단층집과 또 하나는 전면에 거라지가 달린 단독주택
형태 였다. 하나같이 고급스럽게 포장된 거대한 박스처럼 보였다.
허름해 보이는 주택들도 40만불 정도에 리스팅 된 걸 확인 할 수 있었으며, 많은 주택들은 그 두배를 넘어선 가격이 매겨져 있다.
캘거리의 주택가격은 작년에 비해 평균 26%가 올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많은 주민들은 그들 소유 주택이 현재 얼마 받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을 정도로 매일 가격이 폭등한다고 한다.
토론토에서 1994년에 이주해온 한 친구는 당시 방이 4개 딸린 주택을 구입했으며, 같은 돈으로 그가 토론토에서
팔고온 주택 보다 두배 규모 큰 주택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리얼터는 그 집이 이제 최소한 50만 불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갑자기 토론토가 그리워 지기 시작한다.
캘거리에 정착한 친구들은 캘거리 만의 독특한 문제점을 귀띔한다.
바로 공부를 다 마치지 않은 어린 청소년, 학생들 까지도 학교를 그만두고 돈의 유혹에 빠져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당장의 풍족한 일자리와 임금에 현혹되어 너무 일찍 부모로부터 독립 하려는 경향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캘거리에서 상점들을 찾아 보기는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대형 실내 몰 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개인상점 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우리는 시의 이스트 지역으로 이동했다. 캘거리의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방갈로와 줄지어 선 트랙터 홈들도
보였다.
최근에 이 지역에서는 몇 차레의 갱단과 관련된 총기난발 사고가 있었다. 갱 관련 기사는 신문지상을 덮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한 뉴스에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두 건 정도의 총격사건은 토론토에서는 전혀 생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캘거리도 토론토의 경우처럼 악화되는 사태가 몇년 내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한다.
다시 캘거리의 번화가로 향했다.보우강 위에 뜬 센터 브리지는 사자상으로 조형된 웅장한 석조 건축물 이었고, 프린세스
아릴랜드 공원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토론토에서 자주가던 sushi집보다 훌륭한 일식당 또한 쉽게 찾아냈다
하지만 도심에서의 경험은 토론토의 그것과 비교해 점점 우리를 식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캘거리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우리가 이주를 결심할수 있도록 흠뻑 매료될 캘거리의 매력을 더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들 부부는 우리를 다운타운의 가장 오래된 명소인 스티븐 애비뉴로 안내했다. 지금은 거대한 몰로 탈 바꿈 되어 있었고, 거리의 끝에는
거대한 철제 조형물이 밤 하늘 높이 솟아 조명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심공간이 무척이나 인상적 이었다. 예약된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족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환상적이었다.
와인을 마셔가며 우리는 완전한 친구가 되어 있었으며 그날 저녁을 웃음 속에 보낼 수 있었다. 정말 감명깊은 캘거리의
밤이었다.
우리가 캘거리에 완전히 정신이 팔린걸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로 훌륭하고 새로운 경험 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