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 가져다 주는 삶의
의미
-흐르는 강물
안희선의 이 시는 상실의 철학을 연상시킨다.
이 시에는 시간의 불가역성 (不可逆性)에 대한 탄식이
촘촘히 들어 있다.
삶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삶이란 시간은 성숙을 지향하건만,
뒤돌아 보는 사람의 눈길은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이것은 미분화된 삶의 완전성이 의식의 분화와 함께 분열되어 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엄마염소와 아기 염소
어릴 때
교실 뒤 켠에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반사경처럼 겹쳐진다.
안희선 시인은 어릴 시절
미분화된 의식의 완전한
체계를
“사랑”으로 표상시킨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분별의 간교한 생각이
백지상태인
천진무구한 소년의 감성을 이해하리라
이 시의 의미를….
안희선 시인의 시적인 노스탈쟈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나온다.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어릴 시절
학교 교실에서 그가 공부하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어머니가
무의식의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어머니의 사랑은
폭풍처럼 위압적이지도 않고
불꽃처럼 타오르지도 않는다.
마치
고요한 호수처럼
시인의 마음을
고요히 잠재우는 그런 사랑이다.
마지막 연의 탄식을 보라.
“사랑을 잃어버린
이 세상의 말로써는 표현이
되지 않는,”
인간 의식의 분화,
이기심으로 짓누르는 세상.
사랑이 상실된 이 세상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통해서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이기심과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삶의 소테리올로지 (구원; soteriology)를 안겨주는
태고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을 유아기적 회기라고 하기엔
나 역시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안희선 시인의 이 표현
”그곳에 어미의 고요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
어느새
”음매에. 음매에..."
나도 이렇게 어린 염소처럼 울며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이~
어머이~
<경상도 사투리>
☞ 안희선 님께서 남기신 글
바람 부는 들판에서
세상의 창백한 풍경을 딛고
엄마 염소를 찾는,
어린 염소와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
음매에. 음매에...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곳에 어미의 고요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
그것은 언젠가,
어린 시절의 학습참관일에
내가 보았던 침침한 교실 뒷줄에
조용히 앉아있던 엄마의
따스한 표정에서 읽혀졌던
그런 사랑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이 세상의 말로써는 표현이
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