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좋은 대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지나던사람 님께서 남기신 글
제가 좀 민감하게 반응한것 같군요. 종교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 종교 님께서 남기신 글
지나던 사람님,
저는 님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은 모든 분야를 포괄합니다.
저는 한국 정치가 혼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민주주의나 정치적 투명성이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많은 진보를 해 왔습니다.
정치적 편가르기라구요?
여기는 삶의 한 장 (space)입니다. 누구나 어떤 주제를 두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습니다. 서울
시장 선거는 한국 정치에 많은 정치적 변수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시장이 앞으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를 생각하는 것도 이 서울 시장경력을
통해서입니다.
어떤 형태의 담론행위도 우리 문화의 일부입니다. 어느 것은 허용되고 어느 것은 안된다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편가름을 하는 것은 이런 의견개진이나 토론없이 거저 살다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으로 내 생각을 펼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기도 하고, 그 의견에 반대하면 진지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토론이 말싸움이 아닙니다. 우리 세계에 펼쳐지는 여러 사건들을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한국 이민자를 장거리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한국사람이 오는 이 곳에 와서 질문을 하기도 하고 답변을 합니다.
부동산이나 무슨 정보가 다 우리의 살림살이의 일부는 아닙니다. 등산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골프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무슨 단체 가입이나 교회가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문화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합니다. 그 문화가 가치있다고 하는 것은 그 문화를 수용하고 만드는 인간 주체의 활동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던 사람님의 이 의견도 전혀 무가치한 것이 아닌 님의 한 의견이며, 저의 이런 반론도 한 의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삽니다. 시를 쓰는 분은 시를 쓰고, 부동산에 관심있는 분은 부동산에, 동호회에 관심있는 모임에,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뒤지게 파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함이 한국인 사회를 역동적이게 만듭니다. 저는 오히려 한국에 대한 논의가 너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국 고대사는 물론 현대사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여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국이 전혀 혼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캘거리가 더 혼탁한 지역입니다. 부동산 올라가는 것 보십시오. 아직 아무런 규제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채를 가져도 세금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없습니다. 한국을 보십시오. 집값잡으려고 얼마나 노력합니까?
일제의 억압과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근대화와 개발독재의 출현, 민주주의....
이런 한국 현대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찹니다. 그런 한국의 격동과 미래를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혹시 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읽어 보셨는지요. 위니펙에 인권 재단을 세운다고 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의 르완다나 남아공에 대한 관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캐나다처럼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에서 왜 우간다나 다른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지고 파룬궁 사람들이 박해를 받는 중국의 인권상황을 거론합니까?
저는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종교는 종교로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종교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기호학, 문학이론 등을 다 해야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문화의 일부는 특정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서울 시장이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했을 때, 이것은 종교적 발언이지만,정치적 발언이기도 하며,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이나 못된 권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세훈 변호사가 환경을 걸고 나오는 것이나 강금실 전 장관이 보라색을 강조하는 것도 사회 문화적인 요소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우리의 삶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체계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무비자 협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렇다면, 여기에 미국 비자 어떻게 받는지 하는 질문은 올라오지 않습니다.
다양성 속에 문화적 유형이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학문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게 세계를 이해할 때는 누구나 이런 이해의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님께서 이런 요청을 하는 것도 사회적 관여의 일부이겠지요. 그래서 소중한 것이기도 하고, 또 제가 동의를 하지 않아서 반론을 제기 했습니다.
두서 없이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 지나던사람 님께서 남기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