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한참 많이 남았을 때
그 땐 마을마다 우물이 하나씩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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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려워 펌프질을 하려면
푸석푸석
신경질 내는 펌프를 달래느라
바가지에 하나 가득
마중물을 내려 보내고
으샤으샤
솟아 오르는 차고 맑은 우물물!
작은 몸뚱이가 녹슨 손잡이에 대롱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할 때 마다
콸콸대던 물소리
까르르 웃는 꼬마들의 웃음 소리
무지개 방울은 지붕 위로 퐁퐁 날아 갔지
세월을 꺾고
또 꺾고 보니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보다
더 많아진 듯 보이네
초조함에 목이 마려워
주위를 둘러봐도 우물은 보이질 않고
병에 갇힌 채 졸고 있는 생수들!
목줄기와 목덜미를 함께 타고 내리던
차갑고 맑았던 오래 전 기억을 되살리려 마셔보지만
좀처럼 되살아 나지 않네
그러나 어딘가엔
반드시 우물이 있으리라
그 우물을 찾는 날
또 펌프질을 해야 한다면
한 바가지가 아니라
내가 마중물이 되어
우물 속에 갇혀 있던
맑고 순수한 모든 것들을
솟구쳐 올라 오게 하고 싶다
소박했지만 아름다웠던 꿈들
맑은 웃음과 티 없는 모습들
목 마른 대지위에 힘차게 뿜어 내고 싶다.
살아갈 그 남아 있는 날들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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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priming water): 펌프로 물을 퍼 올릴 때,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하여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