露 宿 者의 辯
1. 노제(路祭)
가슴에 군불을 지핀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눈이 맵다 .
버려선 안될 것 들을 태운다.
떠나기 위해 짐을 푼다.
더러는 포기하고
때로는 빼앗기고
많은 걸,그랬다,그냥 주었었다.
눈치 없어
끊어야 할 연(緣)만 움켜 쥐고
그만큼 아파했다.
그게 삶 인 줄도 몰랐건만
진작에 게임은 끝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
스스로 훌훌 턴다.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넌다.
아마 바빠서,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동안
2. 실명(失明)
슬픈 영화는 끝나고
부은 눈으로
막
극장의 검은 커튼을 열어 젇히며
두터운 어둠을 빠져 나올때,
햇살에 부신 눈 들어 새하얀 비둘기로
푸드득 날아 올라,날아 올라라.
아무것 보이지 않는
가벼움.
3. 독(毒)
아, 세상아
이건 정말 재난 이었단 말이다.
나도 살고 싶었단 말이다.
다시 시작해 보자고?
네 죄를 네가 아냐고?
미안해 ,
변명 인 줄 알지만
더 이상 수족(手足)이고 싶지 않아
당분간 너희가 조금 궁하다해도...
마른 회한(悔恨)이 되먹잖게 서걱 거리면
소주 병나발로 다시 퍼지는 독을 푼다.
4. 유아독존(唯我獨存)
집도 절도 없이
먼지 푸석한 도심을 떠돈다.
그렇게 간다.
절뚝 절뚝 다리를 절며 끌며
수혜 받지 못한 이름을 거두어
땅만 보고 걷는다.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이 거지 같은 세상을
그렇게 홀로 거지 처럼 넘는다.
( 2004. 3.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