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에서 부서지는 것이
있다
불타올라
내가 잠들어야 할 들판의 마른 풀까지
모두
태워 놓고
돌아가는
저 잔잔한
모랫바람.
그림자를 키대로
늘여놓고
이 텅 빈 마을의 복판에 서서.
산과 산 사이 길이
있다
내가 가는
길
그리움으로 불타오르는 저 산을
보라.
허섭쓰레기 같은 잡초들까지도 네가
밟으면
뿌리까지 수줍음에 물이 드는
산
뒤돌아 올수록 선명하게
타오르는
저 불빛, 너를
비추며
내 몸의 마디마디가 핏빛으로 타고 있다.
우리가 가다가 멈춘
땅에도
풀이 자라고 모래가
부서지고
새가 날은다. 흔들거리며 벌레들이 긴다.
이윽고 모든 것들이 잠이
들고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나는 여기서 멈추어
있으련다
그림자만으로 가고 있는 사람아.
--- 노혜경의 '貧者의 저녁'
* 어쩌면, 우리는 삶이란 路程에서
마음 붙일 곳
몰라 평생을
서성이는
노숙자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르는 세월로 탈색된 하얀
침묵이
차라리 더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좋은 시, 감상하고 갑니다.
건필하소서.
☞ 뜬구름
님께서 남기신 글
路 宿 者의 辯
1. 노제(路祭)
가슴에 군불을 지핀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눈이 맵다 .
버려선 안될 것 들을 태운다.
떠나기 위해 짐을 푼다.
더러는 포기하고
때로는 빼앗기고
많은 걸,그랬다,그냥 주었었다.
눈치 없어
끊어야 할 연(緣)만 움켜 쥐고
그만큼 아파했다.
그게 삶 인 줄도 몰랐건만
진작에 게임은 끝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
스스로 훌훌 턴다.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넌다.
아마 바빠서,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동안
2. 실명(失明)
슬픈 영화는 끝나고
부은 눈으로
막
극장의 검은 커튼을 열어 젇히며
두터운 어둠을 빠져 나올때,
햇살에 부신 눈 들어 새하얀 비둘기로
푸드득 날아 올라,날아 올라라.
아무것 보이지 않는
가벼움.
3. 독(毒)
아, 세상아
이건 정말 재난 이었단 말이다.
나도 살고 싶었단 말이다.
다시 시작해 보자고?
네 죄를 네가 아냐고?
미안해 ,
변명 인 줄 알지만
더 이상 수족(手足)이고 싶지 않아
당분간 너희가 조금 궁하다해도...
마른 회한(悔恨)이 되먹잖게 서걱 거리면
소주 병나발로 다시 퍼지는 독을 푼다.
4. 유아독존(有我獨存)
집도 절도 없이
먼지 푸석한 도심을 떠돈다.
그렇게 간다.
절뚝 절뚝 다리를 절며 끌며
수혜 받지 못한 이름을 거두어
땅만 보고 걷는다.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이 거지 같은 세상을
그렇게 홀로 거지 처럼 넘는다.
( 2004. 3.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