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끝에서
떠나기 망설이는 지난 여름의 자취는
눈동자 가득 배어든 달빛에 실려
누리는 고독 속에 슬픈 몸을 잠그고,
마른 풀잎 사이로 꼬꼭 채워진 귀뚜라미
소리, 소리, 소리...
한 가슴 여미며 소스라치게 튀어나와,
아름다운 추억과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깊은 밤의 이슬로 삭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행복한 시절이 오히려 지금이라 말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오직 밤하늘의 깊은 별만이 알 것 같습니다
아, 나는 오늘도 얼마나 여러 번 밤에 잠을
깨어야 할까요
꿈 속에 보이는 것이 당신의 모습이 아닌데도
차가운 침묵 속에 아스라이 다가오는
이 밤의 적막은 당신을 닮아가고
퍽이나 예의바른 나의 언어는
그것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나 이미 권태로운 소망도 없건만,
또 한번
당신을 생각하기 위하여 바람에 부치는 울음,
아니 오래 전에 화석이 되어버린 모진 그리움을
이 밤의 푸른 장막을 향해 칼처럼 내던집니다
무엇이 날카로운 소리로 당신을 놀라게 하는지
묻지도 않고...
흔히 일컬어지는 세월은
당신과는 달리 일컬어짐을 알고 있기에,
행복과 고난이 깃든 이 밤에
가을처럼 편지를 씁니다
사랑과 원망의 두 음(音) 사이에 놓인
휴식처럼,
나의 음정(音程)을 당신께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