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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쓰는 편지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4795 작성일 2006-09-11 13:15 조회수 842

 
가을에 쓰는 편지


오랜 세월 끝에서
떠나기 망설이는 지난 여름의 자취는
눈동자 가득 배어든 달빛에 실려
누리는 고독 속에 슬픈 몸을 잠그고,
마른 풀잎 사이로 꼬꼭 채워진 귀뚜라미
소리, 소리, 소리...
한 가슴 여미며 소스라치게 튀어나와,
아름다운 추억과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깊은 밤의 이슬로 삭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행복한 시절이 오히려 지금이라 말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오직 밤하늘의 깊은 별만이 알 것 같습니다

아, 나는 오늘도 얼마나 여러 번 밤에 잠을
깨어야 할까요

꿈 속에 보이는 것이 당신의 모습이 아닌데도
차가운 침묵 속에 아스라이 다가오는
이 밤의 적막은 당신을 닮아가고
퍽이나 예의바른 나의 언어는
그것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나 이미 권태로운 소망도 없건만,
또 한번
당신을 생각하기 위하여 바람에 부치는 울음,
아니 오래 전에 화석이 되어버린 모진 그리움을
이 밤의 푸른 장막을 향해 칼처럼 내던집니다

무엇이 날카로운 소리로 당신을 놀라게 하는지
묻지도 않고...

흔히 일컬어지는 세월은
당신과는 달리 일컬어짐을 알고 있기에,
행복과 고난이 깃든 이 밤에
가을처럼 편지를 씁니다

사랑과 원망의 두 음(音) 사이에 놓인
휴식처럼,
나의 음정(音程)을 당신께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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