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4 – 5 일 정도 따로 일정을 잡아 동아시아 각국을 여행할 생각이다.
올해 일정은 방콕. 태국은 난생 처음이다. 아직 방콕 공부가 입문 단계라 쥐뿔도 모르긴 하지만 대충 다음과 같이 큰 틀을 잡고 차차 수정 보완해 가려고 한다.
항공: 인천-방콕 왕복은 에어캐나다 에어로플랜 마일로 3 만 마일이면 비즈니스클라스를 이용할 수 있다. 생각보다 싸다. Star Alliance 의 아시아나항공이나 Thai 항공 중 선택하면 된다.
참, 여담이지만 올해 3 월부터 에어캐나다가 드디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밴쿠버-인천 간 063, 064 편의 객실을 확 바꾸었단다. 기종은 그대로 B767 이지만 그나마 전 좌석에 AVOD system을 장착했고 실내 디자인도 새로 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이제 대한항공(071, 072) 차례다. 에어캐나다는 일부 교포출신 승무원들의 콧대만 좀 낮추면 되겠고, 대한항공은 재수없이 자기 앞에서 비빔밥 떨어졌다고 대책없이 삐지는 약간 천진난만한 아줌마 아자씨들만 좀 성장해 주면 고국방문이 더 즐거워 질 것 같다.
Anyway, 그런데 인천-방콕 항공 스케줄을 검토하다 보니 대부분 인천에서 저녁에 떠나 방콕에 오밤중에 도착한다. 좋지 않다. 새벽 2 시가 넘어야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항공스케줄이 대부분이다. 택시를 타고 시내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면 3 – 4 시, 이래 가지고야 여행 첫 날부터 리듬을 깨뜨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인천에서 오전 10 시 20 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을 선택할까 한다. 홍콩에 한번 기착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2 시간 정도 길어지긴 하지만, 방콕에 현지시간 오후 4 시 전에 도착한다는 건 큰 장점이매 틀림없다. 귀중한 ‘밤’을 하루치 더 확보하는 셈이니까. 비즈니스석에서 두 시간쯤 더 보내는 건 돈을 더 주고라도 하겠다.
또 한가지, 캐나다에서 출발하는 모국방문 Package를 보면 예외 없이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앞서 이야기한 ‘오밤중 비행기’로 환승해서 방콕으로 곧장 날아간다. 총 비행시간 만 약 17 시간이다. 비행기 타기도 전에 피로감 먼저 몰려오는 일정이다.
어쨌든 나는 혼자 자유여행을 할꺼니까 남들 Package 일정까지 걱정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렇게 무리하게는 안할란다. 서울에 큰 가방을 내던져 놓고 고국에서 첫 날 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 단촐 하고 홀가분하게 carry-on 하나만 달랑 들고 다시 인천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탈 작정이다. 별 이유도 없이 태국을 뻔질나게 드나든 경험이 있는 내 캐나다인 친구 야그로는 그 나라에는 딱 세 가지 계절밖에 없단다. 더운 여름. 열라 더운 여름. 졸라 더운 여름. 짐이 많아야 할 까닭이 없다.
숙소: 북미 지역을 돌아 다닐 땐 지역에 따라 호텔 (록키 산골) 에 묵기도 하고 유스호스텔 (New York, San Francisco) 에 묵기도 했다. 몇 년 전 뉴욕에서 유스호스텔에 묵은 이유는 맨하튼 호텔들의 한숨 나오는 객실과 eye-popping price가 도저히 매치가 안돼서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방콕은 사정이 다른 것 같다. 예약사이트를 잘만 섭렵하면 박 당 50 불 안팎에 편안하고 깔끔한 호텔을 건질 수 있다. 그랜드 아유타야 나 프린스 팰리스, Khaosan에 있는 Buddy Lodge 정도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궁전 같은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오리엔탈이나 샹그릴라 역시 박당 3 백 불 아래다. 비수기인 지금 샤토레이크루이즈의 그 좁아터진 방의 lake view 가 박당 600 불이 넘는 걸 생각하면 꿈 같은 가격조건이다.
아무리 꿈 같은 가격조건이라도 내가 오리엔탈에서 묵지는 않을 것이다. 이혼여행이나 재혼여행도 아니고, 하다못해 아메리칸 캥스터의 프랭크 루카스 처럼 비즈니스(?)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역마살 약간 낀 자유여행자가 혼자 싸 돌아다니는건데 그런 특급호텔에 기어든다는 건 어쩐지 모양새가 어울리지 않는다.
어젯밤, 수쿰윗 번화가와 가깝고, 고층이라 야경도 좋은, 게다가 얼마 전의 리노베이션으로 무척 깨끗해지기까지 했다는 로얄벤자를 타이-호텔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박당 1,500 THB (캐나다화 약 50 불). 즉시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른 건 그만두고 위치가 마음에 들어 예약을 넣어 보았다가 퇴짜를 당한 것이다. 이 요금은 한국여권소지자에게만 해당되고 캐나다여권소지자에게는 해당이 안되니 돈을 ‘아주 많이’ 더 내시던가, 다른 외국 예약사이트를 알아보시라는 친절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어디나 마찬가지다. 호텔을 예약할 때 호텔예약사이트를 통하는 것이 개인이 해당호텔과 직접 딜 하는 것보다 비교적 싸다. 내가 요 며칠 경험한 바로는 태국 호텔의 경우는 ‘비교적’이 아니라 ‘월등히’ 싸다. 문제는 내가 찜한 호텔이 어느 예약사이트와 다른 곳 보다 싼 가격에 계약을 맺고 있느냐다. 나처럼 혼자 가는 자유여행자는 이런 사이트를 찾아내려고 웹을 뒤지는 것으로부터 여행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호텔뿐 아니라 항공권이나 다른 투어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동수단: 대부분 택시로 이동하겠지만 앞으로 BTS 와 지하철 노선과 시간표 등도 공부할 계획이다. 그 전에 우선 방콕 시내 지도를 열심히 보며 지리개념과 방향감각부터 익히고 있는 중이다.
우선 짜오프라야 강을 따라 운행하는 수상버스를 이용하여 강변 시가지 여기 저기를 섭렵해 볼 생각이다. 국립박물관, 왕궁, 왓포 등 관광지는 물론 야시장, 차이나타운, 인도타운 등 북적거리는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모두 이 강 주변에 있다. 수상버스가 북미 도시들의 Loop Tour 처럼 중간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탈 때 마다 다시 표를 사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타 볼 생각이다. 뱃삯을 보니 마음 짠 해지는 애기지만, 백 번을 다 돈 내고 탄들 (우리 기준으론)별 부담이 아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일정이 짧으므로 방콕 시내를 싸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듯싶다. 고상하게(?) 왕궁이나 사원을 감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처음 가는 나라에 가서 구석 구석 뒷골목 까지 돌아 다니면서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문화에 빠져 보는데 중점을 둘 것 인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건 가 봐서 결정할 사항인 것 같다.
방콕에서 약 2 시간 거리인 파타야의 워킹스트릿과 트랜스젠더들이 벌이는 알카쟈 쇼를 보러 갈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태국의 당당한 한 문화다. 이 방면에서라면 태국을 한국은 물론 캐나다보다도 깨어있는 선진국 반열에 넣어주고 싶다.
방콕에서는 당연히 수쿰윗과 팟퐁 등에 널려있는 agogo bar는 물론 그 2 층과 지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도 구경갈 것 같고, 파타야에 간다면, 여성 관광객들로 미어 터진다는 ‘북 치는 소년’도 보러 갈 것 같다. 남녀노(少는 제외)를 불문하고 거의 몽땅 가는 데를 나만은 안 갈 거라고 오리발 내밀지는 않는다.
백 수십 만에 달하는, 대부분 가난한 가정 출신 태국 젊은이들이 종사하는 이 나라 최대 산업분야(섹스 industry)의 역사와 특수성을 한걸음 물러서 먼저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이 먼저 인지, 아니면 10 원 한 장 보태주는 것 없으면서 소돔과 고모라니 퇴폐니 주둥이만 놀려대는 게 장한 짓인지 아직 그 나라에 가보지도 않았고 현실을 이해할 정보도 부족하니 잘 모르겠다. 갔다 와서 짚이는 것이라도 있으면 야그해 볼란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없긴 하지만 하루 정도 투자하여 해 볼 것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앞에 이야기한 짜오프라야 강을 누비는 수상버스를 타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담넌사두억 수상시장과 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를 다녀오는 일일투어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틈틈이 해 둬야 아주 나중 나중에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는 그 때 태국에 가서 무엇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할 때 “그래.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이 어렵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을 구경했고, 역사의 현장인 콰이강의 다리를 숙연한 마음으로 다녀왔단다" 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 가처럼 “마사지 받을 때 서비스가 화끈할 못 생긴 여자를 고르느라 콰이강이고 지랄이고 구경조차 할 시간이 없었단다” 라는 실언으로 두고두고 개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태국.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데도, 누가 가 보라고 추천한 일이 없는데도 갑자기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슬프고 아름다운 나라일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까지 들면서 말이다.
가기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현지에서 허둥대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그리고 의미 있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되는데 지장이 없도록 자료를 열심히 모을 생각이다. 이것이 내 여행의 즐거움 중 가장 중요한 부분들 가운데 하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