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에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기전에 영화평을 읽고 듣기도 하였기에 저에게는 약간의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오니 아이가 영화가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내
평생에 본 영화 중에 제일 형편 없는 영화야!” 이였습니다. 제 딴에는 사순절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고,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이렇게 말들이 많은가? 했었는데, 저에게는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제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왜 난 아무 느낌도 없었을까?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각자의 느낌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였습이다. 영화에 감명을 받아 흐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나같이 오히려
혐오감만 느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보고 별을 한 개 주었다고 했는데, 저는 그것도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평할만한 사람이 못 되지만, 제 생각에는 아주 졸작이었습니다. 그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에는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태인들의 항의시위가 영화 홍보에 한 몫 단단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는 주님의 고난을 그렸다기 보다는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인간 잔인성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개봉 첫 날 어느 여자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뉴스를 듣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볼려고 했었는데, 아이들이
아내에게 이 영화를 보지말라고 해서 안 본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는 Diet를 하는 사람들이 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영화의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것 때문에 밥맛이 떨어지니까, 살빼기에 안성마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인간의 잔악성을 그린 이 영화는 저에게 주님의 고난을 느끼고 묵상하기에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저는
혹시 멜 깁슨이 정신병자가 아닌가? 라고 까지 생각했는데, 제가 좀 너무 했나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한
그는 결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집에 오면서 “벤허”에 나오는 고난의 장면을 생각하며 비교해 보았습니다.
벤허에는 고난이 있었고, 연민이 있었고, 인간미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폭력과 잔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미성년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밤에 잠을 못 자며 정신적인 어려움을
격을까봐 걱정입니다. 멜 깁슨은 예수님의 고난을 그려서 신앙에 도움을 준다고 했고, 많은 목화자들이 이 영화를 적극 권장한다지만, 저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악몽의 세계에서 헤멜까봐 걱정입니다.
저에게는 입장료가 아까운 영화였습니다. 다행히 화요일 저녁에 할인표로 보았으니
망정이지, 본전 생각이 날뻔 했습니다. 멜 깁슨은 이 영화 때문에 한 몫 잡은 것 같은데… 의문입니다. 그 돈을 어떻게 쓸런지… 가룟 유다가
반납한 예수님을 판돈 “은 30냥”은 최소한 불쌍한 나그네들을 위한 공동묘지 구입에 쓰였는데… 그 엄청난 돈이 멜 깁슨의 주머니만 두둑히 채워
준다면, 그는 가룟 유다보다 더 나쁜 사람일겁니다.
제가 “벤허”를 너무나 좋아 하니까, 아이들이 성탄절 선물로 비디오 테입을
사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악몽 (?)과 같은 “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영상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 오늘 저녁엔
“벤허”를 다시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