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놈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군요.
추운 겨울이 뭐가 좋다고.
요즈음 날씨가 한국의 가을 날씨를 연상케 하고
추석에 딱 알맞은 날씨라고 누군가 그러더군요.
언젠가 10월3일 개천절을 맞아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에
놀러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싱그러운 가을날씨를
제 생애 가장 멋진 추억으로 가지고 있지만
이곳 캘거리에서는
9월 내내 그런 날씨를 보일 때가 많아서
그 추억은 많이 퇴색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캘거리도 이제는 점점
나의 아름다운 기억에서 시라져 가는 듯 합니다.
아직 4년이 채 안된 이력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또한 가소로운 말장난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바로 아래 누군가 쓰셨던..
또다른 2000년의 캘거리 모습을 찾아 다른 도시로
갈것을 꿈꾸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대도시화가 빨리 진행되고 사람이 많아지면
돈이 빨리 빨리 돌아서 흥청망청 돈쓰는 재미가 생기고
돈버는 재미도 생기고 먹을 것 볼 것 많아져서
일견 도시가 활기차고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나는 슬퍼집니다.
이곳 사람들이 그동안 가진 소박한 마음과 구김살 없는 정,
그것 대신에
세련된 욕심과 경쟁적인 조바심이 자리잡아 갑니다.
미소와 양보, 포용과 공동체적 공공성 대신에
무표정과 무관심, 완고함과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대신 똬리를 틀어가고 있습니다.
붐이 일어나 비지니스가 활성화되어 돈을 더 벌게 되지만
대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아이들과 나누는 시간이 자연히 쪼개져 버렸습니다
더욱 바빠져 몸은 더욱 피곤해 지고 자신의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캘거리의 봄....
오일샌드가 가져다 준 이 내키지 않은 봄에
날씨 마저도 캘거리의 모습을 점점 잃어갑니다.
겨울이 그다지 춥지 않은 가운데
그렇다고 잔디와 나무가 오랫동안 녹색을 유지하는 것도 아닌데
기온만 올라있는 이 이상한 계절들...
캘거리가 춥지 않아 겨울 언 동치미 맛도 옛맛을
잃어갑니다. 얼음이 둥둥 뜨는 그 감칠 맛..
이상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벌써 열대성 바이러스가 위도가 높은 어딘가에서 검출된다는
기사가 있는 것을 보니 괜히 찝찝합니다.
겨울이 춥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더 몰려옵니다.
경제가 아무리 좋아도 날씨가 확 추워버리면
사람들로 하여금 망설이게 할터인데요...
그래서 난 꿈꿉니다.
캘거리가 겨울을 되찾기를.
못된 바이러스도 죽고,
경제 붐에 괜히 마음이 덜떠서 막연히 오는 사람들도 막고..
짧은 여름이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줄도 알고.
작은 도시의 촌스러움 속에서도 합리적인 질서가 살아 있는
그 옛날 캘거리에는
소박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어우러져
조용하고.. 사랑스럽고.. 깨끗하고.. 맑은 이야기들이
샘물처럼 솟아나곤 했었다지요.
혹..이름이 캘거리로 바뀌어서 그런가요..
첨에 오니까 칼가리라고 그러던데.
칼가리.. 벌써 촌스럽잖아요. 그래서 좋던데요.
칼가리의 겨울이 다시 옵니다.
온 사방에 하얀 눈이 뒤덮여 매서운 겨울맛을 보여준다면
그래서 동치미 국물이 살얼음을 만들고 급기야 꽁꽁
얼어버린다면 망치로 깨어서 소담스럽게 담아가지고
소박한 사람들과 페치카 앞에 앉아 긴긴 겨울 밤을
촌스런 얘기 나누며 먹어 볼랍니다.
동치미 국물과 무슨 페치카..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내와 함께 먹어보세요. 겨울밤 별미로 최곱니다.
뭐 꼭 커피나 와인하고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랍니다.
뉴욕이나 시카고 등등 그런 도시면 몰라도..
캘거리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캘거리의 아름다운 가을을
더 느껴야 할 것 같군요.
노오란 단풍의 캘거리...
노란 색은 PEOPLE( 민중, 서민, 대중, 일반인)을 의미하는 것인데
캘거리의 가을은 그래서 더욱 정겹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하늘 한가운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