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투표 하다
맞아,그랬었지.
거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어.
낮엔 태극기, 밤엔 인공기 바꿔 달던
한때의 생존 습성으로
그 티미한 광화문 촛불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깜박 잊고 있었지.
일장기 휘날리던 조선총독부에도
경무대에도
5월 군사혁명 기념사진 속에도
양주에 취해 타는 목마름을 노래하던 요정에도
이제들 말하기 시작한 서슬퍼런 역사,
그 배후마다 계신 가문의 어르신들을
혹은 사돈의 팔촌을...
맞아,저버려선 안돼.
잠시 내가 눈이 삔거야.
그때를 아십니까?
고무신짝과 밀가루 포대,수건하며 시계들
막걸리에 취해 더욱 눈 부시던 벚꽃놀이
공짜의 추억 또는 향수,
알다 마다, 꿈엔 들 잊겠어?
시방 우린 너무 멀리 소풍 나왔어.
실리와 명분,
경계에 서면 진눈깨비 내리고
오돌 오돌 떨다 보면 분명해 지지.
맞아, 내 코가 석자인데...
우리를 꼬드겨서 광야로 몰고 나온
모세의 약속,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신기루 일뿐.
당장 내가 춥고 배 고픈 걸...맞아.
민망하다만 스스로를 지켜야 겠어.
그때로 돌아 갈테야.
질끈 그렇게 투표 마치고
누가 볼세라, 죽장에 삿갓 깊이 눌러 쓰고
방랑 삼천리, 길 떠나는 김삿갓.
( 2004. 4 .15 .총선이 끝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