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삶의 현실성.
그것이 고통이든 기쁨이든,
언어로 표현되지 않으면 고통일 수도 없고 기쁨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 시의 질문에는 이미 대답이 내포되어 있군요.
경험을 언어로 표상한다는 것은
내게 일어나는 사건을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 경험을 구조화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때, 질서라는 것은 나의 삶을 짓누르는 지배자가 아니라 나를 혼돈으로부터 구제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경험을 둘러싸고 있는 무의미와 혼돈에서 언어의 씨줄 날줄로 주단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이미 당신은 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혼자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놓은 언어의 오솔길을 따라 가면
갈대밭도 있고,
낙옆도 있고,
바람소리도 있고,
햇빛도 있고,
그리고 "님"이라는 궁극적 의미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시내 운 님께서 남기신 글
뉘 시오니까 ?
시내 운
어둠의
골방에
절망을 깔고 누운 불치병자에게
치유의 호롱불 밝히는 당신은
뉘 시오니까 ?
절망을 깔고 누운 불치병자에게
치유의 호롱불 밝히는 당신은
뉘 시오니까 ?
들것에 실려
버려지는
체념의 혼백에
생기를 불어 넣는 당신은
뉘 시오니까 ?
체념의 혼백에
생기를 불어 넣는 당신은
뉘 시오니까 ?
가믈 가믈
끊어지는
이승의 인연 되 살리는
따스한 손길의 당신은
뉘 시오니까 ?
이승의 인연 되 살리는
따스한 손길의 당신은
뉘 시오니까 ?
용암처럼 뿜어
나는
기쁨의 환성 하늘에 뿌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당신은
뉘 시오니까 ?
기쁨의 환성 하늘에 뿌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당신은
뉘 시오니까 ?
아픈 신음을
찬송으로
원망의 한탄을 통곡의 기도로
근심 걱정을 감사로 바꾸며
치유의 이적을 눈에 보이게 하신 당신은
뉘 시오니까 ?
원망의 한탄을 통곡의 기도로
근심 걱정을 감사로 바꾸며
치유의 이적을 눈에 보이게 하신 당신은
뉘 시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