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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 목연 조윤하의 “삶을 아는 지식” (Knowing Life)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게시물번호 -6081 작성일 2006-12-09 07:11 조회수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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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진 뒤 / 목연 조윤하


가을비 지나간 숲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금을 그어도

상처처럼 물들었던 나무들

하늘과 마음과 강물마저도

넘치도록 이어진 슬픔이

뚝뚝 져버린 것은

모든 추억이었다.

낙화 눈물 낙엽들

나마저도 내려놓아야 하는 아픔의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또 꿈틀거려야 할 생(生)이거늘

차라리 추락한 것만이

깊은 안락의 자리에

편안한 침묵으로

잊어 달라는 그리움 삭이며

시린 발목 긴 겨울 참아낼 때

아마도

영혼의 집 사계(四季)는

언제나 따듯할꺼야.  

06. 11. 5





         소프라노 Maureen O'Flynn

 
목연 조윤하의 “삶을 아는 지식” (Knowing Life)
-내사랑 아프리카
 
1. 삶의 진자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부정하려 해도 그렇다. 언어 하나 하나에는 삶의 궤적이 묻어 있다. 시 한 줄 못쓰는 필부라 해도 상실과 잉여의 추를 오고 갈 줄은 안다. 슬플 땐 슬퍼하고, 기쁠 땐 기뻐한다. 이런 인식의 식별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만큼 끔직한 것은 없다.
 
시인 목연 조윤하의 이 시는 상실, 슬픔, 인고 (忍苦), 추억, 그리고 희망이 하나의 거물처럼 어우러져 상징적 우주 (symbolic universe)를 형성한다. 여기서 단어 하나라도 빠진다면, 이 상징적 우주는 물상화된 사물로 전락한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단어적 질서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은 상실의 추억을 따라가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던가? 우리가 플롯을 따라갈 때 시간을 인식한다고. 우리는 시의 한 올, 한 올을 따라갈 때, 거기에서 우리는 이 시가 형성한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들어선다.
 
2. 상실과 추억
낙엽이 진 뒤, 가을비가 내리다. 그 찬란했던 푸르른 나무가 어느새 상흔처럼 물들더니 지고, 숲길에 젖어 있다. 눈부신 햇살이 오솔길에 비친들 상처되어 떨어진 낙엽을 되돌릴 수 있을까? 푸르게 물길 되어 쏟아질 저 푸른 하늘, 메마르지 않은 강물, 그리고 마음.

그러나 이마저도 단절로 경험되는 것은 상실이 최고조에 달하는 역설적 표현이다.
어떻게 이것이 추억으로만 남을 수 있으리.
“낙화 눈물 낙엽들”

그러나 내가 슬퍼할 그 존재의 아픔마저 삭여 내야 하는
시인의 자리는 처참하면서도 결연하다. 
추억은 결코 시인 혼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회상할 때
새로운 삶의 현실에 직면한다.
아직
“나”의 지나간 슬픔마저 미소로 답할 새로운 생 (生)이 꿈틀거리지 않은가?
 
3. 이별연습 그리고 회상
잊음은 새로운 회상이다. 우리가 잊는다는 것은 결코 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떠난 이를 곱게 보내는 이별 연습이다.
“깊은 안락의 자리에/ 편안한 침묵으로/ 잊어 달라는 그리움 삭이며/
 
그러나 이별은 단순한 두뇌 활동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몸과 혈관으로 흐르는 삶의 모든 흔적을 지워가는 과정이며, 새로운 기억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이런 흔적의 곳곳에는 추억이 묻어 있다. 그래서 더욱 춥다.
“시린 발목 긴 겨울 참아낼 때”
 
4. 삶을 아는 지식 (Knowing Life)
이시는 이별, 슬픔, 추억의 명목 (nominality; 이런 단어가 있다면…)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재 (reality)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실재는 마음의 지식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실재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의 집 사계(四季)는/언제나 따듯할꺼야.”
라고 했을 때,

몸을 떠난 영혼의 안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실과 이별의 슬픔이 몸으로 삭인 그런 삶의 귀결점이다. 영혼의 집에서 네 계절은 항상 따듯할 것이라는 希求는 내 몸과 마음이 경험한 모든 느낌과 언어가 모여있는 세계이다. 이 세계 속에는 내 지나 온 모든 과거의 경험과 흔적이 올올이 보석처럼 박혀 빛난다.   
 
5. 삶이란 무엇인가?
목연 조윤하님의 이 시는 무겁고도 깊다. 이것을 어떤 은유를 써야 적합할까? 존재의 깊이? 삶의 신비?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 영혼의 지식을 구가하던 영지주의자 (Gnostic)가 있었다. 그/그녀는 자신이 간직한 영혼의 문서들이 상실될까 두려워 이집트의 사막에 묻어 두었다. 언젠가 자기와 같은 사람이 나타나 찾아주길 바랐는지 말이다.

사실 그랬다.
이 문헌이 1945년 내그 하마디 (Nag Hammadi)라는 곳에서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1700여 년 동안 숨겨져 있었을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지주의와 이 시를 등치시키려 함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조윤하 님의 시는 육체를 부정하는 영지주의와는 같지 않다. 그의 시는 슬픔을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고통하고 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몸의 기억이 변하지 않은 실재로 남게 되는 것은 영혼의 안식을 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산 삶의 터가 있고, 내가 지나온 궤적이 있다. 그리고 그 터와 궤적이 만들어 놓은 우주가 있으니 이것을 상징적 우주라 하자.
그 우주에 참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경험과 느낌은 다 다르다. 그러나 내 경험의 세계에서 따뜻함을 희구하는 것은 동질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나는 시인이 만들어 놓은 상징의 세계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러나
영혼의 집에 도달하기까지
내 발이 너무 무겁다!
마치 발에 추를 메달아 놓은 듯이….
----- ----- ----- ----- -----
 
내 사랑 아프리카님,
 

우선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달필과 달변의 자기치장으로 존재를 부각시키는

요즘 세상에서 시어 마디마디를 끌어와

나를 꽁꽁 묶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일상을 통한 삶의 희열과 고뇌의 처절함을

그 언어를 풀어가며 거미줄 같은 집을 짓습니다.

이것은 시가 시인의 집이라는 역설로도 통하지요

 

이 시에서

시가 너무 무겁고 깊은 우물 속에 잠긴 듯한

저 자신의 집을 들어내 보인 것 같아

송구스럽고 마음 또한 무겁군요.

 

가을이라는 계절을 통하여

인생조락의 이면을 보는 안타까움과

떨어져 누운 낙엽들의 숲길 아래로

흙의 따듯함을 숨쉬는 영혼들의

귀소(歸所)의 안락을 종교내지는

자연의 법칙을 더듬는 내면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별의 상심과 앞으로 남아 있는 생의 결별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

내 사랑 아프리카님,

졸시를 화자의 의도보다 높고 깊은 혜안으로

감상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 깊이 전합니다.

 

 

P C 

캘거리에 계신 시인들의 작품을

날카롭고 예리한 시안(詩眼)으로 품평해 주시고

격려와 고무를 아끼시지 않는 많은 분들이 계시어서

작품 한 편에 실리는 본질의 무계와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사유의 깊이가

날이 갈수록 여여롭지 않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 점 독자들의 수준 높은 눈높이의

만족도를 위한 성숙한 작품을 요구하는

좋은 바람으로 받아들이면서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조윤하 올림       


**********************************************

감상문을 때마다 주간식 시험 답안을 때처럼

긴장됩니다.
은유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의미형성의 가능성을 변명으로 삼지만,

시어 자체가 드러내는 내재적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말만 채우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위안도 삼습니다.

대화가 단지 소통 (communication)만은 아니다.
대화는 만남 자체다라고….

시를 통해서
목연 선생님을 만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토요일 아침에

내사랑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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