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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
작성자 T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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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6197 |
작성일 2006-12-14 18:41 |
조회수 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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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Paul Anka
Every day my Papa worked to help to make ends
meet, to see what we would eat, keep those shoes upon my
feet
Every night my Papa would take and tuck me in my
bed, kiss me on my head after all my prayers were said
Growing up with him was easy time just flew on by.
The years began to fly through his age and so did I
I could tell that Mama wasn't well. Papa knew and deep
down so did she, so did she
When she died, Papa
broke down and cried. All he said was "God, why not take
me?"
Every night he sat there sleeping in his rocking
chair. He never went upstairs, Oh, because she wasn't there
Then one day my Papa said "Son, I'm proud the way you
grow, Make it on your own. Oh, I'll be okay alone"
Every time I kiss my children Papa's words ring true
"Your children live through you. They'll grow and leave you,
too"
I remember every word My papa used to say I
live them everyday He taught me well that way
Every
night my papa would take And tuck me in my bed Kiss me on my
head When my prayers were said
Every night my papa would
take And tuck me in my bed Tuck me in my b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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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먹여주고 돌보시기 위해, 균형있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하셨지요.
매일밤 아버지께서는
날 침대로 데려가 이불을 덮어주시곤 했지요. 내기도가 끝난후에는 내 머리에 키스를 해주셨지요.
아버지와 함깨 자란건 그저 편안하게 흘러간 시간이었어요, 세월은 빠르게 흘러 아버지도
나도 나이가 들기 시작했지요.
난 어머니께서 건강하지 않으시다고 말했어요. 아버지는 내심 알고 계셨던
거죠. 엄마도 알고 계셨던거에요..
엄마가 돌아가셨을때, 아버지는 주저 앉아 울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오로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신이시여,왜 날 데려가지 않으셨어요"
매일 밤 아버지는
흔들의자에 앉아 잠이 드셨어요. 결코 윗층으로는 올라가시지 않았어요. 어머니께서 그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들아, 난 너의 자라는 모습이 자랑스럽단다,
이젠 네 마음대로 하렴, 난 이제 혼자 괜찮을거란다"
내가 아이들에게 입맞춤할때 마다
아버지의 말씀이 정말 들리는것 같아요. "아이들이 너의 그늘아래 살지만 그들도 자라서 역시 너의 곁을
떠날거란다"
난 아버지께서 해주시던 모든 말들이 기억나요. 닌 매일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살고있죠. 내게 그 방법을 잘 가르쳐 주셨던거에요.
매일밤 아버지께서는 날 침대로 데려가
이불을 덮어주신곤 했지요. 내기도가 끝난후에는 내 머리에 키스를 해주셨지요.
매일 밤
아버지께서는 날 침대로 데려가 이불을 덮어주셨어요. 이불을 덮어주셨어요
| **Paul Anka 그는 누구인가** 북미 팝을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인
폴 앵카(Paul Anka·65). ‘다이아나 ’, ‘유 아 마이 데스티니’, ‘퍼피 러브’ 등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그 멜로디를
익숙하게 여기는 그의 명곡들이다. 50년대 아이돌 스타로 화려하게 음악계에 입문한 뒤 125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15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그는 지금도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로 빛나는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성공했다면, 그건
음악과 노래에 온 정신과 노력을 집중해 살아왔기 때문이죠. 열정과 사랑을 남김없이 노래에 쏟아 부었고 후회 없이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는 “나 자신을 최고의 팝 스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항상 노력할 뿐”이라면서도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나트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가수라고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1941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난 폴 앵카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차고 넘쳤지만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 부닥쳐야 했다. 하지만 그는
14세 때 가족들 몰래 아버지 차를 몰고 나가 아마추어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꿈을 위한 정진을 계속했다. 그는 “16세
때는 이미 노래를 평생의 업(業)으로 삼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그의 히트곡 ‘다이애나’는 알고 보니 그의 청소년
시절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이었다. 자신의 동생을 돌보던 보모를 흠모한 끝에 작곡한 노래였다고 한다. “내가 15세 때, 그 보모는
18세였어요. 이름은 다이애나였죠. 사랑을 느꼈지만 나이 차이가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당시에는 달랐거든요.
동생들을 보살펴주는 그녀의 평온한 얼굴은 너무 예뻤고 사랑스러웠어요.”
‘아이돌 팝 스타’의 원조로 꼽히는 그는 10대
시절 일찌감치 수퍼스타로 뜬 비결에 대해 “타이밍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천편일률적 팝 스타일과 정반대로 내 노래는
에너지가 넘쳤는데, 이게 팬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평생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것 같지만 그에게도 고통의
시간은 있었다. 폴 앵카는 “비틀스의 등장과 함께 하드록이 득세하면서 내 스타일의 음악이 외면받기 시작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내 열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정직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분석해 위기를
이겨냈어요.”
그는 요즘의 아이돌 팝 스타들에 대해 “섹시하고 멋있지만 노래의 정수(精髓)에 충실한 것 같지는 않다”고
한마디 했다.
“요즘은 (녹음)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진실한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죠. 물론 여전히 노래
잘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걱정스러울 정도로 못하는 친구도 있어요. 미국 팝 음악계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진짜
음악(real music)을 해야 합니다.”
그가 여전히 열정을 뿜어내는 것은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관리한
덕택이기도 하다. 그는 “일주일에 다섯 번, 1시간 이상씩 웨이트 트레이닝과 걷기를 한다”며 “술, 담배도 안 하고 육식도 가급적
피한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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