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엇인가 나사가 빠져 있다.
저번에
반기문장관이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반기문장관의 인터뷰모습에서 그 어떠한 위기의식과
열정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선비같은 꼿곳한 자세 그 자체였습니다.
또 한 예를 보죠, 22일 새벽2시 sbs
앵커가 현지 이라크의 임대사와 전화인터뷰를 하게되었습니다. 임대사의 첫마디는 “안녕하십니까”였습니다. 앵커가 안녕 못합니다. 지금 난리가 났는데
안녕하시냐는 말이 나오십니까 대꾸하였습니다. 그 한마디는 지금 지도층 인사들의 의식을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엄청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그렇다치더라도 지도층 인사의 안일함과 관료들의 눈치보기가 극에 온 것 같습니다. 아주 상식적인
것을 무시하고 대통령부터 밑에까지 겸손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자기가 잘났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교만이 죄를 낳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어느종교를 보더라도 표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겸손과 사랑은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했을 때의 결과는 많은 역사적
사건이 증명합니다.
위기는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탄핵사태부터 우리는 그 교만함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사과한마디 하면 될 것
가지고 그 오기가 탄핵을 불러일으켜고 그러면서 극과극을 달리며 싸움에 열중했습니다. 대통령이 이기면 영원히 가지고 갑니까 순간입니다. 국민은 그
탄핵이 잘못됐다고 외치며 노대통령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러면 겸손함으로 국민을 어루만져야 했습니다. 복귀가 무슨 전쟁터에서 이겨 돌아온 것처럼
자랑거리라고 복귀하자 마자 교만함에 빠져 버렸습니다.
대통령의 교만함은 그 이후 이루어진 정책실패와 재,보선 선거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비판하면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계층간 분열을 야기시켰습니다. 결국 기회주의를 낳아습니다. 보신주의를 낳아습니다.
이번 사태는 교만함의 결과가 가져다준 극치였습니다. 작년에 파병결정되었습니다. 그러면 실무부서는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했습니다.
국방부는 국방부대로 외무부와 국정원은 그 자체대로 준비를 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준비는 아주 상식적인 것에서 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전의 확보입니다. 위험지역에 가는 데 우리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안전은 군사적인 측면도 있지만 외교적,정치적인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유사시를 대비한 인적네트워크 확보, 위기상황 대처법, 민사적인 전략, 동맹국과 연대 방안 등 많습니다. 그것은 외교부와 국정원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느냐 마느냐로 허송세월 보냈습니다. 준비가 철저히 이루어질리 없습니다. 눈치 보느라고 말입니다.
교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함으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홍수와 가뭄이 나면 내가 통치를 잘못해서 그렇다고 한탄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홍수난 곳을 방문하는 것을 구태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모습과 행동의 실천은 구습일지라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러면 국민은 저절로 신뢰하고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