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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확인했더라도
작성자 추모님     게시물번호 -629 작성일 2004-06-25 20:16 조회수 1793

김선일씨가 피랍된 지 3일 만인, 그리고 김씨가 피살되기 19일 전인 지난 3일, AP통신이 김씨의 신원과 피랍사실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던 것이 결국 사실로 확인됐다.

정부가 한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을 접하고도 소홀하고 무신경하게 처리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상식적으로만 대처했더라도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외교통상부는 이라크 파병문제를 다루는 핵심 주무 부처이며, 이라크 주재 교민의 안전문제는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이라크에선 파병 국가 국민에 대한 테러가 속출해 왔고, 외교부 홈페이지엔 ‘이라크 사태 관련 국민의 안전조치를 강화코자 한다’는 내용이 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권위있는 외국 언론사가 김씨가 납치된 사실이 있느냐고 문의해 왔다고 한다. 이 문의전화는 아중동국·공보관실등 두 곳으로 걸려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사실이라면 특히 이라크 교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아중동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AP기자가 김선일씨 이름을 직접 밝혔다면 전화를 받은 아중동국 관계자는 이라크대사관에 사실 여부를 조회하는 게 기본 임무며, 그랬다면 김씨의 피랍 사실은 곧장 확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공보관실 직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중동과나 영사과에 문의해 보라”는 답변만 했다고 한다. 그도 역시 아중동국 또는 재외교민영사국 등 담당 부서에 AP의 문의사항을 알려 사실을 확인하도록 했어야 했다.

AP기자가 김선일씨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외교부 관리들은 국민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최소한의 업무 룰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외교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당연히 이라크 주재 교민 57명의 명단쯤은 본부에 보고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중동국 직원이 직접 또는 공보관실 직원이 관련 부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김선일씨의 소재를 확인하는 데 별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씨 피랍 사실이 공개된 지난 21일, 그리고 AP의 통보 사실이 불거진 24일 이후에도 이 사실이 즉각 규명되지 않은 대목도 외교부 전체의 공인 의식을 의심케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만일 그때 외교부가 제대로 대응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최종적으로 추가 파병을 결정한 것은 지난 18일이고, 이라크 교민들은 “그때부터 강한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고 전하고 있다.

AP 텔레비전 뉴스측이 공개한 비디오 테이프를 봐도 피랍 직후 김씨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납치자들을 설득하는 모습이 나온다. 김씨의 피살이 임박했을 때 상황을 담은 비디오 속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이라크 추가 파병이 확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라크 무장단체들은 한국인 인질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입장 정리가 뚜렷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AP의 통보 직후 외교부가 상황에 대응했다면 추가파병 확정까지 보름 가까운 기간이 있었던 만큼 김씨 피살 당시와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협상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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