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순수한가?
1. 종교는 문화 현상의 하나
종교가 궁극성을 향한다 (ultimate concern)고 하더라도 종교적 신념체계나 경험이 표현되는 것은 문화적 도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언어는 종교적 경험이나 신념체계가 표현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현상을 종교조직체에 초점을 두다 보면 종교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종교는 종교적 조직을 통해서 유지되고, 일반 문화현상과 교호작용 또는 갈등 관계를 통해서 생성, 발전, 소멸되기도 합니다.
종교가 궁극성을 향한다 (ultimate concern)고 하더라도 종교적 신념체계나 경험이 표현되는 것은 문화적 도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언어는 종교적 경험이나 신념체계가 표현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현상을 종교조직체에 초점을 두다 보면 종교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종교는 종교적 조직을 통해서 유지되고, 일반 문화현상과 교호작용 또는 갈등 관계를 통해서 생성, 발전, 소멸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문화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 종교적 현상을 간과할 수는 없지요. 특별히 종교와 철학, 그리고 문화적 습관이 통합되어 있는
힌두들의 경우, 힌두종교를 연구하는 것은 힌두 문화 연구와 등치될 정도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신도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신종교인 천리교의 예를 들어 봐도 마찬가지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천리교의 의례를 보면, 신도적인 강한 영향과 아울러 불교적인 요소가
관찰됩니다. 미국의 기독교 역시 미국의 청교도적인 전통 에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독특하게 낳은 미국적 기독교이고, 이런 미국적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는데, 한국의 경우, 미국보다 더 보수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한국 기독교의 지배담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만이 가지는 기독교
종교문화 현상이지요.
2. 종교적 순수성의 강조는 특정 종교의 배타적 경향성
“순수” (purity)의 개념은 사회적 구성 (social construction)이나 사회적 산물 (social invention)의 결과입니다. 기독교 보수 근본주의에서 많이 강조하는 복음의 순수성이라는 것은 19-20세기에 형성된 종교적 반동운동의 한 형태입니다. 미국의 보수근본주의는 세속성, 학문의 자유, 진화론을 배태시킨 근대성 (modernity)의 반응으로 나타난 종교적 경향성으로, 자기들이 근대성이 낳은 시대적 조류에서 자기들이 “순수하다”고 믿는 신념체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현상입니다.
“순수” (purity)의 개념은 사회적 구성 (social construction)이나 사회적 산물 (social invention)의 결과입니다. 기독교 보수 근본주의에서 많이 강조하는 복음의 순수성이라는 것은 19-20세기에 형성된 종교적 반동운동의 한 형태입니다. 미국의 보수근본주의는 세속성, 학문의 자유, 진화론을 배태시킨 근대성 (modernity)의 반응으로 나타난 종교적 경향성으로, 자기들이 근대성이 낳은 시대적 조류에서 자기들이 “순수하다”고 믿는 신념체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경향성을 안티 혼합주의 (anti-syncretism)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보수 근본주의의 신념체계가 아무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금 같은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신념의 구성물을 “순수”하다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안티혼합주의, 또는 순수주의란
기실 종교적 배타성의 지수 (degree)가 다른 기독교 교파나 교회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종교는 비정치적인가?
우리가 집단적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집단행동이나 운동을 하는 것 역시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캐나다의 경우, 동성결혼법제화를 반대하기 위해서 자유당정부에 압력을 넣었거나, 또는 스티븐 하퍼의 보수당 정부에게 통과된 법을 재고하라고 하는 운동을 순수한 신앙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까? 숫자와 집단적인 힘으로 자기들의 힘을 관철시키자 하는 운동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정치적 행위는 미국의 보수 근본주의에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집단적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집단행동이나 운동을 하는 것 역시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캐나다의 경우, 동성결혼법제화를 반대하기 위해서 자유당정부에 압력을 넣었거나, 또는 스티븐 하퍼의 보수당 정부에게 통과된 법을 재고하라고 하는 운동을 순수한 신앙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까? 숫자와 집단적인 힘으로 자기들의 힘을 관철시키자 하는 운동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정치적 행위는 미국의 보수 근본주의에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파기스탄의 독립을 몰고 온, 힌두교와 이슬람의 갈등, 타이랜드에서의 불교와 이슬람의 갈등, 영국과 아울랜드의 신구교 갈등, 수단에서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 등 이 모든 갈등은 정치적 담론 행위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종교가 정치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사회에서 소수국가를 제외하고는 종교와 국가의 분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종교의 정치적 담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4. 한국에서의 사학법
한국에서 사학법에 가장 반대하는 단체는 기독교 단체입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기독교적 전통으로 볼 때 그 대의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사학 교육의 자율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사학법이 통과되면 특정 단체가 설립한 특정 교육기관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좌지우지되지 못한다는 우려가 강하겠지요.
한국에서 사학법에 가장 반대하는 단체는 기독교 단체입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기독교적 전통으로 볼 때 그 대의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사학 교육의 자율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사학법이 통과되면 특정 단체가 설립한 특정 교육기관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좌지우지되지 못한다는 우려가 강하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기독교 단체에서 사학법에 반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운동이야 어느 집단이나 단체에 공정하게 허용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국민의 전반적 정서와 의견에 배치된다면, 사학법 재개정 운동은 치명적인 비난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앞으로 개신교회가 한국에서 존경을 받으려면, 사학법 재개정같은데 힘을 쏟기 보다는 자기 조직 갱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갱신운동의 항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목사, 장로, 제직 선출의 투명성,
교회에서 헌금 사용의 투명성
교회에서의 모든 행정절차의 민주화
교단에서의 노회장, 총회장 선출의 공정성과 투명성
기독교 사학재단의 투명성
교회에서 헌금 사용의 투명성
교회에서의 모든 행정절차의 민주화
교단에서의 노회장, 총회장 선출의 공정성과 투명성
기독교 사학재단의 투명성
적어도 위의 목록만이라도 교회가 지킨다면, 사학법 재개정에 피를 끓이는 대의의 정당성 (legitimacy)은 한층 증가할
것입니다.
* 말씀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