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 없는 제 경험(굴비에 얽힌 사연)에 관심과 격려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쏟아놓지 않으면 안되리 만큼 쌓여버린 4년 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민 생활동안의 여러 경험들을 가까운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고,
좀 더 욕심을 내서 내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랬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대학을 졸업하고,
고만고만한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두 아이를 가졌던 서민의로서의 평범한 삶은,
다람쥐 채바퀴돌듯한 무료함과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
복작복작 살며 아둥바둥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를 비웃듯이 오르는 전세값에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을 학원으로 ,공부로 몰아가는 현실앞에서,
아이들 학원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할거라는 불안에 절망하고 낙심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한 미적응자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쫓기듯 내몰린 이민 생활동안
남편은 몸무게가 10킬로 이상 줄었고,
평균이하의 작은키에 몸집 또한 작은 나는
미국 사람들이 10대로 오해 할 만큼 더 작고 왜소해 보입니다.
알파벳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지요.
인종차별하는 선생님을 만나 한 달 가까이 학교에서 종이학만 접다온 작은아이,
공부 할 때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데,
밖에 나가 노는 시간만 되면 죽을지경이라서 나무에 기대 혼자 하늘만 쳐다 본다는 큰 아이.
한국에서 자기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경시대회에서도 일등할만큼 똑똑했는데,
왜 미국에 데려와 바보를 만들었냐며 진지하게 따져 묻기도 하더군요.
그렇게 2년 쯤 지났을때 ,
한국말이랑 영어가 똑같이 쉽다며 재잘대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10학년인 딸아이는 의대를 목표로 열심을 내고,
8학년인 아들 아이는 욕심내서 MIT를 꿈꾸고 있습니다.
물론 영주권은 미국 도착후 1달만에 우편을 통해 받았구요.
재작년에는 작은 집도 마련했고,
작년 가을 샌드위치 가계를 인수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 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매일이 기적같은 일이지요.
물론 중간에 사기를 당할뻔 한적도 있었고
가까이 지내던 한국분에게 일자리를 통채로 빼앗기기도 했으며,
믿거라 했던 분에게 노동 착취를 당해 배신감에 이를 물며,
일부러 한국 사람을 멀리 했던 적도 있었지요.
이런 얘기들을 자세히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족의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러나 못다한 얘기들은 이제 마음에 접으렵니다.
나 개인의 고백이 다른 수 많은 이민자의 귀중한 삶을 왜곡할까 두려워 졌기 때문입니다.
이민을 꿈꾸시는 분.
그리고 현재 치열하게 사시는 이민자분들 .
힘내시길 바랍니다.
새끼줄로 고목을 베는 인내와
무쇠를 녹일듯한 가족사랑이 결국은 승리할겁니다.
마지막으로 김 구선생이 좋아하셨다는
서산대사의 싯귀 한구절로 못다한 얘기를 대신하렵니다.
새하얀 눈밭을 걸어가니
그 걸음 흐트러져서는 안되리
내 오늘 찍어놓은 발자국
뒷사람들 따라 걸을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