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발해를 당나라 때
속말말갈인이 중국 동북과 연해주에 세웠던 지방정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건국한 뒤 약 230년 동안 오늘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지배했던 우리민족의 당당한 대제국이었다.
668년 고구려가 망하자 옛 고구려 지역은 큰 혼란에 빠졌다. 당은 고구려의 부흥운동에 겁을 먹고 수많은 유민을 요서와 중국 내륙지방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대걸걸중상(大乞乞仲象)과 대조영 부자도 이때 요서 지방 차오양으로 이주당했다.
696년, 거란족인 송막도독 이진충과 귀성주자사 손만영이 반란을 일으켜 영주를 함락시키고 도독 조문홰를 죽였다. 이 반란으로 당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 대중상은 고구려의 유민 수만명을 이끌고 말갈족 지도자 걸사비우(乞四比羽)와 더불어 차오양을 탈출, 동쪽으로 랴오허강을 건너 고구려 옛 땅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은 대중상을 진국공(震國公)으로,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으로 봉해 달래려 했으나 이들은 허울뿐인 명예직을 받지 않았다. 당은 회유책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무력 행사를 시도해 대장군 이해고와 중랑장 색구로 하여금 이들을 추격해 섬멸하도록 했다.
당군과 쉴 새 없이 혈전을 벌이면서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들은 계속 요동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싸움에서 걸사비우는 전사하고 대중상도 행군 중에 병사했다. 최고지도자가 된 대조영은 출중한 용맹과 지략까지 겸비한 당대의 영웅이었다. 그는 끈질기게 추격하는 당군을 유인해 천문령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대조영은 무려 5,000㎞의 대장정 끝에 698년 오늘의 지린성 둔화시 쑹화강 건너편의 동모산에 오동성을 쌓고 새 나라 대진국(大震國) 건국을 선포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고 세웠으니 이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만의 일이었다.
668년 고구려가 망하자 옛 고구려 지역은 큰 혼란에 빠졌다. 당은 고구려의 부흥운동에 겁을 먹고 수많은 유민을 요서와 중국 내륙지방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대걸걸중상(大乞乞仲象)과 대조영 부자도 이때 요서 지방 차오양으로 이주당했다.
696년, 거란족인 송막도독 이진충과 귀성주자사 손만영이 반란을 일으켜 영주를 함락시키고 도독 조문홰를 죽였다. 이 반란으로 당나라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 대중상은 고구려의 유민 수만명을 이끌고 말갈족 지도자 걸사비우(乞四比羽)와 더불어 차오양을 탈출, 동쪽으로 랴오허강을 건너 고구려 옛 땅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은 대중상을 진국공(震國公)으로,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으로 봉해 달래려 했으나 이들은 허울뿐인 명예직을 받지 않았다. 당은 회유책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무력 행사를 시도해 대장군 이해고와 중랑장 색구로 하여금 이들을 추격해 섬멸하도록 했다.
당군과 쉴 새 없이 혈전을 벌이면서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들은 계속 요동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싸움에서 걸사비우는 전사하고 대중상도 행군 중에 병사했다. 최고지도자가 된 대조영은 출중한 용맹과 지략까지 겸비한 당대의 영웅이었다. 그는 끈질기게 추격하는 당군을 유인해 천문령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대조영은 무려 5,000㎞의 대장정 끝에 698년 오늘의 지린성 둔화시 쑹화강 건너편의 동모산에 오동성을 쌓고 새 나라 대진국(大震國) 건국을 선포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고 세웠으니 이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