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 기억저편으로 나의 모든 흔적을 날려버린다. 아쉬움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모든 지난 것은 낡은 장롱 속의 빛바랜 연애편지 마냥 아스라하다.
다투고 할퀴며 지키고 쟁취했던 결과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묘비만이 남았음이다.
그 속에 새기고자 했던 것도 어느 낯선 이의 작은 조사조차도 바람에 이는 잎새와도 같은 것임을.
자유로운 영혼이고자 분투하고 절규했던 그 모든 수고가 죽음 저편의 손짓하는 살가움에 미치지 못해.
새벽미명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붉은 기운은 곧 희망이 아니라 영원한 침묵에의 가슴저린 메세지였음이라.
더 이상의 분노도 더 이상의 희망도 더 이상의 아쉬움도 더 이상의 갈채도 더 이상의 호기심조차도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불덩이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