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모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고, 본 자유게시판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와 관련된 공부를 조금 해왔고, 저도 한 교회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다소나마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를 답글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종교고민님께서 진솔하게 기술하신 것들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가 우선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설교듣기가 거북하다면 듣지 마십시오. 물론 교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서로 논의할 수 있다면 좋을테지만 제 추측으로는 -글을 게재하신 것으로 보건데- 님께서 출석하시는 교회에서는 그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사료됩니다.
우선 님께서 고민하시는 문제는
사실상 "해/결/되/지/ 않/는(을)/ 문/제"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요? 이 문제를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합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
계속 고민하세요. 그 고민의 과정 중에 그 해답이 있을 것입니다. 이 해답이라는 것은 명료하게 주어지지는 않을테지만, 더이상 스스로 이러한 문제로 "질문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덧붙여 제가 고민의 길라잡이 역할을 잠깐 하고자 합니다.
님의 이러한 '악'에 대한 문제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고 인류가 어지껏 고민해온 하나의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악의 문제는 특별히 기독교 신학 내에서도 '신정론'이라는 주제, 혹은 거대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왜 하느님은 악을 허락하시는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고 이에 대한 근사한 논쟁 중 몇몇을 신학에서는 배우고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제가 보기에 유치찬란한 논쟁, 옹졸하기 그지없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들입니다. 그런데 신학생들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배웁니다(물론 공부와 담싼 학생들도 많지만).
우리는 우선 종교적인 테두리에서 벗어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과의 문제로 이 문제를 끌어가지 마시고, 가급적
"인간의 문제"로 끌어가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신도 그렇고 악도 인간의 상상 속의 개념으로 규정될 수 밖에 없고, 문화와 역사, 그리고 현실의 온갖 사실들(Sache, Dinge) 자체에서 인간의 "언어"를 통해 하나의 단어로 개념화되기 때문입니다.
악이란 것은 또한 상당히 "상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각종 대립유형을 보더라도 대부분 악은 악과 대립하고, 선은 선과 대립합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겠죠?
기독교의 성서로 범위를 좁혀봅니다.
성서는 신과의 악과의 대립양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인간의 '윤리관'이라는 것이 발생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보고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구약시대로부터 이미 각 성서의 저자가 바라본 어떤 "사회상"(Gestaltung der Gesellschaft)을 통해 그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즉,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이야기(서술) 속에 온갖 악의 정도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태초에 관계(relatio)가 있었다"고도 말하면서, 여기에서 종교(Religion)가 발생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성서는 무엇이 악이다라고 분명히 규명하지 않습니다. 아니 규명할 수도 없습니다. 성서에서도 너무나 다양하게 묘사되고, 때론 신이 악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언제나 '신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긴 합니다. 또 악을 행하는 사람 혹은 존재자는 때론 신의 뜻과 의도에 의한 선한 의지에 의해 이용당하기도 합니다(가령 욥기에서 보면). 이처럼 다양한 악의 존재양태들이 나타나고, 스스로 '말하는 자'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성서는 그래서 문학적, 특별히 사회문학적 관점에서 이해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성서를 '사실'(Faktor) 그자체로 바라보는 것 만큼 성서를 잘 오해하게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부족한 사람, 특히 많은 목회자들에게서 성서에 나오는 각종 악과 관련된 이야기,
혹은 설교는 종종 매우 유치하게 해석되어서 결국 많은 신도들을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유치한 질문들 속에 파뭍혀
이성(사고)의 능력을 한없이 저하시키도록 만듭니다.
그럼, 짧게 다시 간추린다면:
악은 우리가 끌어안고 고민하며 살아야 할 대상입니다. 물론 그것은 대상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것은 나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양상이며 욕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결핍적 요소일 수도 있겠고요. 악이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감할 것입니다.
그 속성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고, 또 저항할 것이며, 더 나아가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악은 대체로
실재 '악인', '원수'로 대상화되어 우리의 삶을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데, 성서에서 예수는 이것을 '원수사랑'으로 승화시키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속에 담긴 깊은 뜻 보다 깊이 이해하시게되다면 아마도 종교고민님께서 고민하시고 질문하신 문제는
더이상 우리를 힘들게하는 것에서 제외될 것이라 사려됩니다.
우선 글을 읽고 생각나는 부분만 말씀드립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종교고민 님께서 남기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