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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한국의 꽃의 시인 김춘수님 타계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894 작성일 2004-11-29 14:11 조회수 1344

그의 수 많은 시편들 중에 특히, 말년의 작품들에 깊은 느낌으로

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시는 시인이 창조한 自然이겠죠.

 

시인은 가고 없어도 그가 남긴 시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조윤하(캘거리 문협) 님께서 남기신 글


지난 8월 4일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분당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온 한국시단의 원로 대여(大餘) 김춘수(金春洙) 시인 이 29일 오전 9시께 타계했다. 향년 82세.
 
고인을 추모하며 그가 남긴 생애를 돌아보는 의미로
여기 그의관한 글과 꽃같은 작품들을 실어 본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한국시단의 원로 대여(大餘)
김춘수(金春洙.82)시인의 문학세계를 총 정리한 「김춘수 전집」
(전5권. 현대문학 刊)이 발간됐다.

김 시인은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 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냈다.
이어 「꽃의 소묘」「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처용단장」
「쉰 한편의 비가」 등 근작시집과 시선 집을 포함해 모두 25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릴케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는 '꽃'을 소재로 한
초기 시부터, 관념을 배제하고 사물의 이면에 감춰진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무의미 시'에 이르기까지 60년 가까이 한국시단에서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위상을 지켜왔다.

경남 충무 출신인 그는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학해 니혼 대학(日本大學)
예술학과 3학년에 재학 중 중퇴했으며, 귀국 후 중 고교 교사를 거쳐
경북대 교수와 영남대문리대 학장을 역임했다.

이번 전집은 그동안 김 시인이 발표한 25권의 시집에
실린 1천여 편의 시를 한군데 묶은 시전 집과 두 권의 시론집 등
3권을 1차 분으로 발간했다. 장편소설 「꽃과 여우」와 각종
산문들이 실릴 산문전집 두 권은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시론전집Ⅰ'에는 「한국 현대시 형태론」「시론-작시법을 겸한」
「시론-시의이해」「의미와 무의미」 등 4권의 시론집이 실렸다.
'시론전집Ⅱ'에는 「시의 표정」「시의 위상」「김춘수가 가려
뽑은 사색 사화집」이 수록됐다.

김춘수 전집은 1982년 문장사에서 발간된 뒤 22년 만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현대문학」이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2년 전
기획해 꼼꼼한 원전 대조, 한자로 된 단어들의 한글 전환작업
등을 거쳐 내놓았다. 시 전집= 1천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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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경남 충무 출생. 사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
이어 <죽순>에 시 [온실]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했다. 릴케의 영향을 받은 그의 초기 시에서
점차 산문적인 시의 형식으로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1948) <늪>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등이 있다.

시인. 경상남도 통영(統營)에서 태어났다.
지난 2004년 7월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꽃은 또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詩로 선정되었다
 


꽃을 위한 서시 - 김춘수 (1922 - 2004)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물망초 - 김춘수

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그러면서 아득히 먼
그대의 모습,
- 하늘의 별일까요?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 나를 잊지 마셔요.
그 음성 오늘 따라
더욱 가까이에 들리네
들리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 김춘수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 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높이 울었다.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스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 세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까?
죽어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투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은
불멸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당뇨 하는가,

나는 스물 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가야서 감방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북 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의 불면의 담담한 꽃을 피웠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역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부터
치욕의 푸른 명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사모곡 - 김춘수


주신 사랑이 적은 듯 싶어도 나삽니다.
주신 말씀이 적은 듯 싶어도 나삽니다.
오밤중에 전기불 꺼지듯 나삽니다.
하느님
나는 꼭 하나만 가질래요.
세상 것 모두 눈감을래요.
하느님
나는 꼭 그 사람만 가질래요.
산엔 돌 치는 징 소리 내 가슴에 너 부르는 징소리.
솔밭이 여긴데 솔 향기에 젖는데
솔밭도 나도 다 두고 넌 어디쯤서 길 잃었니.
나도 바람 이더면 아무대나 갈껄
그대 가는 곳 어디라도 갈껄
내가 물이라면 아무대나 스밀껄
그대 몸 속 마알간 피에라도 스밀걸



가을저녁의 詩 - 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너와 나 - 김춘수


맺을 수 없는 너였기에
잊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는 너였기에
괴로운 건 나였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서로 만나 사귀고 서로 헤어짐이
모든 사람의 일생이려니


나의 하나님 -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 빛 바람이다.



인동(忍冬) 잎 - 김춘수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近郊)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越冬)하는
인동(忍冬)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人間)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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