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 하나. 지금 아프간에 인질로 잡혀있는 23명의 샘물 교회 선교단에게 탈레반이 '무슬림이 된다면 조건없이 석방해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리고 무슬림으로 개종해 목숨을 지키느냐, 종교적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이냐.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23 명의 선교단 개개인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물음표 둘. 한 사람은 종교적 신념을 지키키 위해 목숨을 버렸고, 22명은 무슬림으로 개종해 목숨을 지켰다. 그리고 모두 귀국 길에 올랐다 하자. 이 경우, 기독교 내부에서는 한 사람의 순교자와 변절한 22 사람의 가치를 두고 일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를 지켰는가'에 기준을 둘 것인가. '자신의 생명 가치를 먼저 지켰는가'에 기준을 둘 것인가.
물음표 셋. 국가가 23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테러집단과의 협상원칙을 깨고 비굴한 협상을 해 그들을 안전하게 귀국 시켰다 하자. 그렇다면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할 것인가. 테러집단과 타협하고 굴복했다고 비판할 것인가. 또한 무사 귀국이 정부와 국민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루어 졌다고 할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으로 돌릴 것인가.
억지 물음같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시험해 보는 중요한 잣대라 생각한다. 또한 이것은 변질된 기독교 정신에 충실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봉사라는 명목으로 죽음을 담보로 한 사지에 23명의 젊은 이들을 몰아 넣은 결과,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어떤 구실로 우리 사회에 기독교의 이해타산을 보여 줄 것인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영향력과 왜곡된 기독교 정신과의 함수 관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위 물음의 답을 구하는 것에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나올만한 대답은 인터넷 댓글에 다 나와 있으며 동일 의견의 빈도 수가 압도적이라는 것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의 행태에 대하여 오랫동안 본대로 느낀대로 표현하는 것이 민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번 아프간 인질 사건에 대한 누리꾼들의 싸늘한 의견이 서운할지 모른다. 이유와 경위가 어찌되었건 사람부터 살려야하지 않느냐는 인식은 맞다. 그러나 그 이유와 경위가 국민의 공감이나 동정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본질적인 원인에 더 주목해야 한다. 한 대상에 대한 민심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관찰 후 만들어 지는 것이다.
거창하게 국가와 기독교와의 관계와 역할을 논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독교 집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하나 하나가 민심을 만들었고, 그 민심이 기독교인 23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 앞에서도 냉정함을 보이고 있다. 과연 기독교 내에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 역시 앞의 물음과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독선과 오만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권력, 금력 지향성과 배타적인 행태, 집단이기주의는 종교 본연의 자세를 한참 벗어나 있다. 그런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마치 예수가 못다한 사명을 대신하는 양 추종하는 맹신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민심 이반에 대한 뼈아픈 성찰. 예수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마음맑은아침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