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
당신의 사랑이 쓰러지는 나를 일으킵니다.
내게 용기, 위로, 소망을 주는 당신.
내가 나를 버려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당신.
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는지,
나는 정말 당신과 함께 할 자격이 없는데,
내 옆에 당신을 두신 神에게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커다란 힘입니다.
- 故 장영희 수필집 <생일>에서
張英姬 서강대 문학부 영미어문.영미문화전공 교수 역임
(1952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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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서니 생각>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 어머니
아, 어머니......
그 永遠의 母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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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사람 cyoungh@sogang.ac.kr
동생분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저는 오늘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다음주에 뼈검사와 CT 촬영하고 결과 보고
다시 계속할지 끝낼지 결정해 준답니다...
세브란스 병원 아닌가요. 그럼 우연히 마주칠지도....^^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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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메일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2009년 5월 9일에 세상과 작별했으니, 그녀가 세상을 뜬지도 어언 8년이 되어간다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그녀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그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신(神)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故 장영희 교수는 생후 1개월 만에 소아마비 판정을 받아 평생을 목발을 의지해야 했고
3번의 암 판정을 받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글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남겼다
위의 글은 2001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회복됐다가 2004년 척추에서 암이 재발한 이후 썼던 글이다
그녀는 그동안 조선일보 칼럼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영미시 산책’,
‘아침 논단’ 등을 연재했고 그녀의 사후에 조선일보는 장영희 교수에 대해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장 교수는 두 번째 암 재발 후에도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라는 글을 남겼다
그녀는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강연과 집필 활동을 끊지 않았고,
삶의 긍정적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던졌다
다음은 2008년 12월 조선일보에 투고한
‘2008 겨울, 희망편지-비켜라, 암! 내가 간다“의 마지막 구절이다
“끝이 안 보이는 항암 치료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독자에게 한 내 말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희망을 연구하고 실험하리라.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 연구년이 끝날 무렵에 멋진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면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또 그녀는 장애인의 정당한 권익을 찾기 위해 실천에 나선 행동가였다
장 교수는 2001년 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 시절 7층짜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꼭대기 층에 살던 그는 3주 동안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장 교수는 이 아파트를 관리하던 보스턴 굴지의 부동산 회사를 상대로 싸워
사과와 함께 보상을 받아냈다
당시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장 교수의 스토리를 머리기사로 소개했다
NBC TV와 지역 방송들도 앞 다퉈 소개해 미국 장애인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장영희 교수는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刊)에서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 이라고 적었다
그녀의 빈소를 찾은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투병 사실을 듣고,
장 교수에게 강의 수를 줄이라고 권유했는데 듣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後聞
독신으로 살았던 장영희 교수의 유족으로는 어머니 이길자 여사와 오빠 장병우씨,
언니 장영자씨, 여동생 영주, 영림, 순복씨 등이 있다
장 교수의 아버지 故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994년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선친 장왕록 교수와 함께
먼 캘거리까지 英美詩에 관한 좋은 책들을
보내주곤 했는데...
보고픈 벗이여,
하늘나라에서 평안한 安息이 있기를.
- 희선,
따뜻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