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적으로 최씨 가문의 혈통을 이어 간다는 것은 좌절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며느리는 폴란드 사람이고, 나의 사위될 사람은 스콧트랜드 아버지와 유크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물론 단일민족의 혈통을 지켜야 한다는 나의 과거의 패러다임이 오래 전에 무너졌기 때문에 오늘 나의 가정이 상호문화주의와 다원주의가 된 것에 대해 자연스럽고 대단히 긍정적이다.
10여년 전 한국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내국인들 결혼의 20%가 국제결혼이다.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다.
최근의 통계를 거들지 않더라도, 인류사에서 260만년 전 최초의 인간 호모하빌리스가 아프리카 남부에 출현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의 인간 조상들은 남아프리카로부터 전 세계로 육상과 해상을 통해 유럽, 아시아, 북미, 남미, 호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70억의 인구가 지구촌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하느님이 어느 날 동시에 전 세계 도처에 수많은 아담과 이브를 완성품의 인간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다.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기 전에 몽고지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몽고지방으로 이주해 와서 살기 전에 인도와 시베리아와 중동지방과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주하면서 다양한 민족들과 접촉하고 자식을 낳고 살았을 것이다. 단일민족을 고집하며 살기 보다 생존이 가장 급선무였을 것이다.
한반도에 정착한 이후 적어도 2천여 년 동안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았다. 중국과 징기스칸의 원나라와 일본의 침략으로 우리의 여인들은 다민족의 씨앗을 뱃속에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반 세기 동안에는 미국인들이 수많은 씨앗을 뿌렸다.
한국은 대단히 급속도로 국제화 물결을 타면서, 다원주의와 상호문화주의가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들과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생존의 두려움 때문에 나와 다른 것들을 배척하려고 한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한국인은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기독교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물론 이런 강요는 더 이상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몰상식한 생각이 될 뿐이다.
한반도에 비한국인들이 정착해서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자녀들이 다른 인종, 다른 종교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1세기와 미래에 다원주의와 복합문화를 살아내지 못하면 지구촌에서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삼층 세계관의 종교인들은 이 세상을 버리고 다른 세상으로 가서 그것도 죽은 후에 영원히 살려는 망상에 빠져있다.
30년 전에 캐나다 몬트리얼에 왔을 때, 나의 자녀들의 국민학교를 자주 방문했다. 한 학교의 학생들의 민족적 문화적 배경이 약 60개에 이른다는 사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월이 흘러 오늘 캐나다에는 전 세계 200개의 민족들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 이러한 환경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단히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지구촌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함을 환영하는 세계가 되고 있다.
한반도에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두려워하기 보다 그들을 환영해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처럼 삼면의 바다에 벽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인종과 종교의 경계 넘어 전 세계민들에게 한반도가 삶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는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라는 확신을 심어줄 것인가? 나와 같은 색깔, 나와 같은 믿음, 나와 같은 인종, 나와 같은 사상 만이 우리의 경계 안에서 살 수 있다는 부족적, 민족적, 배타적, 우월적 신앙관과 윤리관과 가치관과 세계관은 망상이다. 하루라도 빨리 내려 놓을수록 자신의 건강과 웰빙에 좋고, 가정과 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