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년 전 캐나다에 오기 몇 해 전에 내가 몸담았던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내가 가진 동산 부동산을 모두 잃고, 다시 공부하기로 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들의 도움으로 석사를 마치고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과 일 학년생인 두 자녀와 아내를 데리고 몬트리얼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머니에는 단지 몇 백불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왔지만 실제 상황은 기대에 크게 못미쳤습니다.
아내와 나는 다운타운의 컨비니언 스토에서 최저시급을 받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나는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케쉬어 일을 1년 6개월 동안 했습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은 파트타임 잡을 여러 개 갖고 일하지 않으면 아파트 랜트비, 그로서리, 아이들 학비, 등등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최저시급 인생이 무엇인지 내 자신이 몸소 체험하고, 최저시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운타운에서 최저시급자들과 살면서 지질학 박사과정 첫 1년을 마치고, 나는 전공을 바꾸어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생명의 의미와 하느님의 의미와 세계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하기로 했습니다.
기업주들이 자신들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을 약간 줄이면 그 줄인 만큼 최저시급의 사람들의 주머니는 훨씬 많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기업주들이 힘들어 번 돈을 몽땅 내어 놓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경제안정이 되려면 먼저 중산층의 삶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중산층과 최저시급자들은 기업을 소유하는 상위층 부자들의 부수럭지 돈을 받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업이 잘 되려면, 국가경제가 안정을 찾으려면, 대다수의 최저시급자들과 중산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고 가장 효과적입니다. 1-2%의 초부유층들은 물론 상위 20%의 부유층이 자신들의 주머니에 들어올 금액을 줄이고 그것을 자신들 보다 덜 버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면 기업과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