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들이 사업을 차렸을 때 쉽게 망하는 이유
나이 든 사람이 회사를 나와 자신의 사업을 차렸을 때 망할 확률이 매우 높은 이유는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실무진 쪽에서 현재의 트렌드와 취향을 고려한 기획을 하더라도 결재권이 올라갈수록 그 기획안은 처음의 신선함에서 매우 훌쩍 떨어져 쉰내가 난다. 그것은 높은 결재권을 가진 사람일 수록 취향의 빈곤과 트렌드를 읽는 안목은 좀 뒤쳐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워낙 급속한 발전을 이룬 나라고 그 발전 과정에서 소비를 죄악시하는 풍조가 있었기에 높은 결재권과 높은 연차를 가진 사람일수록 시장과 괴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이런 사람들의 상당수는 돈을 쓸 줄을 모른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손꼽히는 부촌 중의 하나인 성북동만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가게들의 분위기나 취향이 상당히 올드하다. 들어간 시설 등에서 자본의 향기와 고급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올드하다. 그것이 나름대로 성북동만의 특색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긴 하지만 소비를 죄악시하던 풍조와 소비할 상품과 서비스가 부족한 시대에서 젊은 시대를 보낸 사람들이 소비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소비할까 에 대한 답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반면 같은 부촌이지만 한남동은 좀 다르다. 미군과 외국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인구 유입과 유출에서 큰 변동이 없는 성북동과 달리 그래도 변동이 존재해서인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가게들도 많고 트렌드를 잘 맞춰 나가는 부분도 존재한다.
바로 이 차이가 나이 들어 회사를 나와 가게를 차리는 사람이 시장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 예라 나는 생각한다. 오랫동안 취미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아닌 이상에야 안목은 몇십년 전에 머물러 있기 마련이고 그나마도 그 안목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돈은 있지만 안목과 취향은 빈곤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주변엔 소위 '업자'가 몰린다. 이런 업자들은 아주 훌륭한 세일즈맨이다. 자본만 많고 취향은 빈곤한 사람들을 홀릴만한 아이템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잘 현혹할 줄도 안다. 취향이 없기 때문에 '요즘 잘 나가는 것'이란 말에 쉽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것을 덥석 문다. 이름만 다른 붕어빵들의 탄생이다.
돈을 제대로 써본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남을 돈을 쓰게 만들 수가 있겠나? 취향과 경험의 빈곤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자본을 노리는 사람들만 주변에 끌어들이게 되어 있다. 애초에 그것을 가려낼 안목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규모가 있는 기업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한두 명 정도가 역량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안정성으로 어떻게든 굴러가게 만든다. 시스템 하에서 매우 뛰어났던 일원일수록 자기 과신은 넘쳐난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자기 사업은 오직 개개인의 역량으로 굴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역량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시스템의 일원이었던 사람이 개인의 역량으로만 승부를 보는 곳에 뛰어든다면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기업의 시스템의 백업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승률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대표적인 부분이 매니징이다. 자신이 그래도 회사에서 '매니징'은 잘한다 여겼던 사람들은 여기에서 자기가 한 매니징은 회사의 시스템이 뒤를 받쳐주기에 가능했던 매니징이란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샐러리맨들이라면 자신의 사업을 차리고 자신이 없어도 그 사업장이 굴러가는 '오토'를 꿈꾼다. 특히나 가진 게 자본뿐인 사람들은 회사에서 하던 식으로 그렇게 하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기도 쉽다. 그러나 이게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 오토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그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구축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게 잘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실패하게 된다.
회사를 나왔을 때 가진 게 자본뿐이라면 그 자본은 매우 쉽게 침탈당한다. 투자에서도 안목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업은 더하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 안목도 없고 취향조차 없다는 것은 그 자본을 지켜낼 성벽도, 해자도 없다는 뜻이나 다름 없다. 내가 현재까지 봐온 바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회사를 나온다. 그러니 실패할 확률이 높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자본도 깎여 나갈 수 밖에 없다.
제 2의 인생이란 것은 제 1의 인생 속에서 2의 인생을 완벽하게 설계했을 때에나 잘 굴러가기 마련이다. 1의 인생과 동일한 방식으로 2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는 행운아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적어도 이때까지 내가 사람들을 봐온 바로는 그렇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