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 고뇌하는 이를 위하여 1. 술이야 언젠들 못마시겠나 취하지 않았다고 못견딜 것도 없는데 술로 무너지려는 건 무슨 까닭인가 미소 뒤에 감추어진 조소를 보았나 가난할 수밖에 없는 분노 때문인가 그러나 설혹 그대가 아무리 부유해져도 하루엔 세 번의 식사만 허용될 뿐이네 술인들 안 그런가, 가난한 시인과 마시든 부자이든 야누스 같은 정치인이든 취하긴 마찬가지인데 살아 남은 사람들은 술에조차 계급을 만들지 2. 세상살이 누구에게 탓하지 말게 바람처럼 허허롭게 가게나 그대가 삶의 깊이를 말하려 하면 누가 인생을 아는 척하려 하면 나는 그저 웃는다네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살아 남은 사람들의 죄나 선행은 물론 밤마다 바꾸어 꾸는 꿈조차 누구나 비슷하다는 걸 바람도 이미 잘 알고 있다네 3. 사람들은 또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산다네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나는 괜찮은데 남들이 무어라 하겠나" 그윽한 목소리로 질타를 시작한다네 그러나 보게나, 조금은 빠르게 아니면 조금은 늦겠지만 삶에 대하여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데도 세상에는 벙어리나 부러워할 수다쟁이와 시인 성직자 그리고 교수가 넘친다네 4.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스치며 울고 웃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가 이제 남아서 내게 미소를 보내겠나 그대의 삶이 아무리 엄청나 보여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듯이 그대가 나와 함께 누우면 너만이라든가 너만을 위해서라는 언약이나 속삭임도 바람처럼 흩어지고 세월은 또 가고 어제처럼 새들이 울고 꽃이 피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또 서로의 매듭을 만들고 5. 그리고 무엇인가를 소유하려 들지 재물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누군가를 그러나 진실로 무엇인가 소유하고 싶으면 그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네 설혹 무엇인가 소유했을지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대가 내 곁으로 올 때는 그와 잡았던 손을 놓아야만 한다네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 모두에게 자유를 주고 모두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정 살아 행복할 수 있다네 6. 살아 숨쉬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길가의 들꽃인들 마구 딸 수 있겠는가 아름답다 느끼는 건 그대의 마음 보듬고 싶다는 건 그대의 욕심 꺾이는 순간이 들꽃에겐 종말이라네 낚시에 걸려드는 고기를 생각해 보았나 한끼의 식사를 취하려다 매달리는 물고기를 그 또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 함께 사는 네 이웃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정 그대에게 환희가 있다는 말에 예수나 석가의 이름을 빌려야 하나 그들인들 그대를 대신해 살아 주겠나 7. 태양을 보게나 살아 남아 있는 동안 얼마나 태양을 보며 푸른 하늘과 숨을 쉬겠나 등을 돌리면 보이는 건 그림자뿐 아무리 그대가 삶을 버리고 싶을 만큼 지쳐 있다 해도 나는 부러워하지 그대의 한숨이나 눈물도 무덤 속보다는 행복하지 않은가 비록 여기는 죄인도 판사도 없고 그 누구에게 지배받지도 않지만 모짜르트도 연주를 멈추었고 고흐도 붓을 놓았다네 8. 때때로 임종을 연습을 해두게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해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고 나면 슬픈 기색을 보이던 이웃도 이내 평온을 찾는다네 떠나고 나면 그 뿐 그림자만 남는 빈 자리엔 타다 남은 불티들이 내리고 그대가 남긴 작은 공간마저도 누군가가 채워 줄 것이네 먼지 속에 흩날릴 몇장의 사진 읽혀지지 않던 몇 줄의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살아 남은 들 떠난 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9. 그대 무엇을 잡고 연연하며 무엇 때문에 서러워하나 그저 하늘이나 보게. - 글 : 칼릴 지브란의 편지, 살아남아 고뇌하는 이를 위하여 칼릴 지브란 [ Kahlil Gibran, 1883.12.6 ~ 1931.4.10 ] 철학자 · 화가 · 소설가 · 시인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레바논의 대표작가. [국적] 레바논 [활동분야] 문학, 미술, 철학 [출생지] 레바논 북부 베샤르(오늘 날의 베챠리) [주요작품] 《예언자》 《모래·물거품》 《방랑자》 《부러진 날개》等 <감상이라기보다는 넋두리> 복용하는 약 때문에... 그 어떤 경우에도 술만은 절대로 금해야 하지만, 아무도 몰래 술을 한 잔 하다가 이 글을 대했다. 마치, 지브란에게 들킨 것 같은 심정. 칼릴 지브란의 글은 언제 읽어도 좋다. 아마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많은 시간들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글인 것 같다. 하여, 전혀 그렇지 못한 나에겐 다소 겸연쩍은 글이지만 (웃음) 그래도, 그의 글을 읽으니... 마치 오랜 벗과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어 참, 좋다. - 희선, Gymnopedie No.3 - Erik Satie (Orchestrated by Debussy) |